24일 경기 안성시 석정동 국민의힘 김학용 국회의원 지역사무소 맞은편 보도에서 안성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황윤희(왼쪽)·최승혁 시의원이 10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하 기자
24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석정동 국민의힘 김학용 국회의원 지역사무소 맞은 편에 단식 10일째를 알리는 펼침막이 펄럭였다. 이곳에서 안성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지난 15일부터 장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임시회에 상정한 19건의 조례안을 일괄 부결 처리하자 항의하는 뜻에서 단식을 한 것이다. 시의회는 국민의힘 5명, 민주당 3명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당 황윤희·최승혁 시의원이 물과 소금만을 섭취하며 단식을 이어가는 중이다. 함께 단식 중인 이관실 시의원이 전날(23일) 탈진과 복통 증상으로 병원으로 긴급 호송되면서 두 명만 남게 됐다.
“다수당인 국민의힘은 8대 시의회 개원부터 안성도시공사 설립이나 공영마을버스 도입 등 민주당 소속 김보라 시장의 주요 공약사업 등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며, 시정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 하다 하다가 이번에는 조례안 심사도 없이 일괄 부결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고 갔다. 지난해 본예산 심의 때도 가용재원 2400억원 가운데 16%(390억원)가량을 삭감했다. 이것이 정상적인 의정 활동인지 국민의힘 시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황윤희 시의원이 생기없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같이 성토했다. 황 시의원은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앞으로 3년을 더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절박함에 거리로 나서게 됐다”고 단식 이유를 설명했다.
김학용 의원 사무소 주변 및 단식농성장 주변 도로에는 안성지역 종목별 체육단체에서 내건 현수막이 병풍처럼 둘러 있었다. ‘시체육회 예산 삭감한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각성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의회 국민의힘이 삭감한 예산 가운데 안성시장기 체육대회 예산 15억원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예산안 심사 때 민선 체육회장의 시대가 출범한 만큼 ‘시장기’ 또는 ‘시장배’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예산을 삭감했다. 최승혁 시의원은 “도내 다른 체육회도 ‘시장기·배’를 사용하고 있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명칭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받았음에도 국민의힘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 지역사무소 인근에 걸린 현수막. 이정하 기자
민주당 시의원들은 이런 사태의 배후에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인 김학용 의원이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단식 농성장을 시청 정문에서 지난 19일부터 김 의원 사무실 앞으로 옮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 시의원은 “김 의원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장기 명칭 사용 문제 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고, 시의회 국민의힘 보도자료도 김 의원실에서 발송되고 있다”면서 “김 의원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김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도 답이 없다”고 했다.
보건소 직원들이 매일 오전 혈당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지만, 체력적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두 시의원은 “시의회 국민의힘은 현재 상식적인 의정 활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실상 대화와 타협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소수당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시민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우리가 의지를 보여주면, 시민들이 화답할 것으로 기대하며 견디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시의원들은 단식농성 중단 조건으로 △여·야·정협의체 구성 △예산 심사 및 삭감 사유 구체적 제시 △ 부결 및 보류 안건 재상정 등 6가지를 제시했다.
시의회 국민의힘은 이날 성명을 내어 “의회 참여는 의원의 기본적 책무로 조건을 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절차에도 맞지 않는다”며 사실상 민주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어 “시의회와 무관한 정치인을 끌어들이는 등 시의회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안정열 시의회 의장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 5명이 이날 오후 단식 농성장을 방문했지만, “민생을 위해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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