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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산불’ 그후 1년…생태복원커녕 불탄 나무도 못 베내

등록 2023-04-04 17:35수정 2023-04-05 02:30

울진 산불이 13일 지속돼 삼척까지 번져
이재면 상당수 여전히 임시조립주택 생활
3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을 감싸고 있던 소나무숲이 지난해 3월 난 산불로 민둥산으로 변했다. 이정하 기자
3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을 감싸고 있던 소나무숲이 지난해 3월 난 산불로 민둥산으로 변했다. 이정하 기자

식목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리 야산에는 풀도 자라지 않는 맨땅에 오래전 잘려나간 나무둥치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땅 위로 솟은 건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까지 검게 그을린 소나무 몇그루뿐이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낸 임도에선 불탄 나무를 실은 운반차가 지날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일었다. 이곳에선 꼭 1년1개월 전인 2022년 3월4일 산불이 일어났다.

울진 북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13일 동안 계속되며 인접한 강원 삼척시까지 번져, 피해 산림면적만 1만6302㏊(피해액 1356억원)에 달했다. 진화까지는 무려 213시간43분이 걸려 역대 최장기간 지속된 산불로 기록됐다. 현재 울진군산림조합이 지자체 위탁을 받아 630㏊ 정도를 긴급벌채하고 있지만, 이는 전체 산불 피해면적의 4%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산림생태 복원을 위한 조림 작업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셈이다. 울진의 명물인 송이버섯 서식지와 멸종 위기 동물인 산양 서식지도 파괴됐고, 민가도 181채가 불탔다.

지난해 3월 경북 울진군 북면에서 난 화재로 불탄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승욱 기자
지난해 3월 경북 울진군 북면에서 난 화재로 불탄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승욱 기자

산불 이재민이자 울진산불 금강송이 생산자 피해보상대책위원장인 장순규씨는 “산림 복원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은 예전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재민 181가구 가운데 17가구만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아직 임시조립주택에 거주한다. 북면 신화2리의 임시조립주택에서 만난 주미자(83)씨는 “살던 집터가 바로 앞에 있지만, 보상비로 새집을 짓기에는 부담이 커서 계속 임시주택에 머물고 있다. 언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산불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울진군의 노력에도 올해에만 3건의 산불이 발생하는 등 화마의 위협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울진군은 올해부터 산불감시원을 70명가량 늘려 195개 리에 1명씩 배치하고, 산불진화대원도 20명으로 확대했다. 1회 담수량이 8000리터인 산림청의 초대형 산불진화헬기 1대도 울진군에 배치됐다. 신화리 일대를 담당하는 산불감시원인 장옥랑(59)씨는 “매일 여러차례씩 마을을 돌며 논·밭 등에서 소각을 못 하도록 하고, 불조심 안내방송도 계속 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3월 산불 피해를 본 경북 울진군이 195개 리에 산불감시원을 1명씩 배치해 감시 및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정하 기자
지난해 3월 산불 피해를 본 경북 울진군이 195개 리에 산불감시원을 1명씩 배치해 감시 및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정하 기자

2019년과 2020년 4월 두번의 큰 산불로 축구장 5540개 규모의 산림(3956㏊)이 잿더미가 된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토성면 원암리에 사는 전상범(80)씨는 주변 산을 가리키며 “4년 전 산불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전쟁터 같았던 대피 당시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여전히 악몽에 시달린다”고 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토성면 마을 인근 곳곳에는 불에 타 뼈대만 남은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황량하게 서 있고, 주변에선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났다. 일부 벌목 작업이 진행된 국공유지에 새로 심은 소나무 묘목은 어른 무릎 높이까지도 자라지 못한 상태였다.

4년 전인 2019년 4월 산불 피해를 입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일대에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소나무숲 잔해가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승욱 기자
4년 전인 2019년 4월 산불 피해를 입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일대에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소나무숲 잔해가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승욱 기자

산불은 산림뿐만 아니라 주민의 삶도 송두리째 앗아갔다. 키우던 소나무 3000여그루가 몽땅 타버린 백윤기(70)씨는 “보상금 소송을 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 공판기일조차 잡히지 않았다”며 “아픔을 딛고 일어나고 싶어도 보상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했다. 고성군 이재민 125가구 가운데 25가구가 아직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임시주택에서 거주 중이다.

이정하 이승욱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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