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악부영아파트 주민들이 뜻을 모아 지난 1일 마련한 경비·청소노동자 휴게실 전경.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1993년 입주를 시작한 뒤 현재 796가구가 사는 관악부영아파트(경기 안양시 동안구)에는 다른 아파트단지에서 좀체 보기 힘든 건물 두 동이 자리잡고 있다. 흰색과 초콜릿색으로 외부를 칠한 이 건물은 냉난방 시설은 물론 싱크대와 냉장고, 간이 옷장도 갖췄다. 밥솥과 전자레인지도 있다. 얼핏 보면 깔끔한 원룸 같은데, 가만히 뜯어보면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컨테이너형 숙소에 가깝다.
이곳은 아파트단지 경비원과 청소노동자(관리원) 12명이 함께 쓰는 휴게실이다. 남성용(18㎡)과 여성용(12㎡) 2개 동이 완공된 건 지난 1일이다. 애초 휴게실은 여느 아파트단지와 마찬가지로 아파트 지하에 있었다. 하수관과 오수관로가 지나고 곰팡이에 찌든 지하방이었다. 이곳에서 관리원은 점심을 먹었고 야근하는 경비는 눈을 붙였다. 여름철엔 눅눅했고 겨울철은 냉장고처럼 냉기가 돌았다. 이런 상태가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감내해야 하는 불편은 물론이고 이를 바라보는 입주민들 마음도 썩 좋지 않았다.
변화가 시작된 건 지난해 4월이다. 안양시의회가 건축 조례를 개정해 아파트단지 내 노동자용 휴게·경비 시설의 경우 용적률과 상관없이 신고만 하면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최월영(69)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동대표들은 지하 휴게실을 관리사무소 옆 햇볕이 잘 드는 화단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건축 비용은 관리비 연체료와 승강기 게시판 광고 수입, 재활용 판매 수입(총 894만1900원)으로 충당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해 9월 안양시에 시설 개선 사업 지원을 요청해 지원금 약 1850만원을 받아냈다. 최 회장은 “아파트는 입주민만 사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하는 분들도 함께 숨 쉬는 공간”이라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1993년 입주한 뒤 경비·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로 쓰였던 아파트 지하공간의 내부 모습(왼쪽)과 안양시 지원으로 관리사무소 옆 화단에 컨테이너를 이용해 지어진 휴게실의 내부 모습이 대조적이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이 아파트의 양병호(66) 경비반장은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옛 정보기관의 말이 생각난다”며 “이제야 궂은일을 해도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청소일을 하는 임유자(75)씨도 “깜깜한 곳에서 쉬다가 공기 좋은 바깥으로 (휴게실이) 올라오니 일할 맛이 난다”고 거들었다.
송미순 관리사무소장은 “이런 사업은 입주민 동의가 필수다. 주민들이 너나없이 관리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태주셔서 뜻을 이룰 수 있었다”며 “1기 새도시는 대부분 관리원 휴게실이 주민 대피 용도로 만들어진 아파트 지하에 있는데, 다른 아파트단지에서도 이런 시설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지난해 ‘공동주택 보조금 지원 사업’으로 12곳의 경비·청소노동자 휴게 시설에 화장실, 샤워실, 냉난방 시설 설치 등 환경 개선 사업을 지원했다. 올해도 10억원의 예산을 마련해 오는 3월 공모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이 사업이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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