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청와대 일대를 지나는 자율주행버스의 모습. 손지민 기자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에 서울 시내를 누비는 여느 버스와 비슷한, 커다란 버스 한 대가 섰다. 거리에서 늘상 보던 초록색, 파란색이 아닌 하얀색 버스다. 19석 규모의 이 버스가 특별한 건 하얀색 겉모습만이 아니다. 버스 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장갑 낀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면 승객들 사이에선 “우와”하는 감탄이 터져나왔다. 기사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버스는 경복궁 돌담길을 지나 청와대 앞에서 매끄러운 우회전을 선보였다. 이 버스는 전국 최초로 시내버스와 동일한 규격으로 만들어진 대형 전기 자율주행버스다. 지난 5일 <한겨레>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주변을 순환하는 자율주행버스에 직접 탑승했다. 실험실에서만 존재할 것 같던 미래 기술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모습으로 어느덧 일상 가까이에 와 있었다.
■ 컴퓨터와 오퍼레이터, 색다른 버스 내부 풍경
경복궁역 인근에서 출발해 국립고궁박물관, 청와대, 춘추문, 국립민속박물관 등 2.6㎞, 5개 정류소를 지나는 자율주행버스는 주로 청와대 인근을 찾는 시민들이 올라탔다. 초등학생 형제를 둔 4인 가족부터 머리가 희끗한 노인까지 자율주행버스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버스에 함께 탑승한 운영 업체 에스유엠(SUM) 박상욱 자율주행운영팀장이 “이 버스는 자율주행버스”라고 소개하자 초등학생들은 탄성을 내지르며 들떴고, 노인은 신기한 듯 버스 운행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자율주행버스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탑승했다는 한 승객은 버스에 도입된 기술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일대를 지나는 자율주행버스의 내부. 안전 상황에 대비해 운전기사와 컴퓨터 프로그램을 살피는 오퍼레이터가 1명씩 내부에 앉아 있다. 손지민 기자
시내버스와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진 청와대 자율주행버스에 다른 점이 있다면 버스 내부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컴퓨터다. 각종 선이 연결된 컴퓨터가 사람 대신 버스를 운전한다. 버스에는 안전을 대비해 앉아 있는 운전기사 외에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살피는 오퍼레이터 1명이 추가로 앉아 있다. 자율주행버스지만 어린이보호구역에 진입하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수동으로 운전한다. 박 팀장은 “현행법상 버스는 자전거도로에 진입할 수 없기 때문에 승객 편의를 위해 보도 근처 정류장에 정차할 때는 수동으로 전환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기술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이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도로교통법을 지키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 순환버스부터 택시까지, 서울의 자율주행 실험
서울시엔 청와대 버스와 같은 자율주행 실험이 청와대, 청계천, 상암동, 강남구 총 4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2월 10일 마포구 상암동 일대에서 2∼6인승 승용형 차량 6대가 자율주행을 시작한 데 이어 7월 셔틀버스와 비슷한 10인승 승합형 차량 1대가 추가됐고, 11월 24일부터 종로구 청계천 일대에 8인승 미니 자율주행버스 2대가 운행을 시작했다. 강남 일대에는 지난해 6월부터 일반 택시와 유사한 자율주행차량 ‘로보라이드’가 시범 운행 중이나 아직 일반 시민에겐 개방되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일대를 지나는 미니 자율주행버스 2대가 일렬로 정차한 모습. 손지민 기자
4곳의 자율주행차량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지난달 22일 운행을 시작한 청와대 버스는 일반 시내버스에 이용되는 차종을 자율주행 목적으로 개조한 차량으로 현재 시범 운행 중인 차종 중 가장 크다. 탑승할 때도 평소 사용하던 교통카드를 찍고 타면 된다. 요금은 무료다. 청계천 미니버스는 처음부터 자율주행을 목적으로 설계·제작됐다. 이 버스의 운영업체 포티투닷 김민규 모빌리티서비스플랫폼 그룹장은 “현재 자율주행차량 대부분은 기존 차종에 자율주행시스템을 설치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내구성이 떨어진다”며 “청계천 버스는 시스템과 카메라 모듈, 센서 등을 처음부터 차 내부에 넣어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상암동 자율주행차량은 유일하게 유료로 승객이 앱을 이용해 직접 출발지와 목적지를 선택할 수 있으나, 셔틀버스처럼 정해진 지점만 움직인다. 승용형은 목적지에 상관없이 1회 2000원, 승합형은 1200원이다. 아직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은 강남 로보라이드는 일반 택시를 호출하듯 승객이 자유롭게 출발지와 목적지를 선택할 수 있고, 차량은 실시간 최단경로를 찾아 자율주행하는 형태다.
청와대 버스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4일까지 약 2주간 총 1215명이 이용했다. 접근성이 좋고, 별도의 앱 없이 탑승이 가능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모습이다. 청계천 버스는 지난해 11월 24일부터 4일까지 누적 1220명이, 상암동 자율주행차량 총 6대는 운행 시작일부터 4일까지 누적 3140명이 이용했다. 서울시는 신기술 투자와 대중교통 인프라 확대 차원에서 자율주행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최종선 서울시 자율주행팀장은 “서울에 심야 교통난이 심한 상황에서 자율주행기술을 대중교통에 접목해 그동안 수익이 나지 않아 운행이 적었던 심야 버스 노선을 확대하는 등 여러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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