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불법투기 지도를 만든 학생들이 투기 장소별 쓰레기의 종류도 다른 점에 착안해 직접 디자인한 밎춤형 쓰레기통. 3D 프린팅을 활용해 직접 모형 쓰레기통도 제작했다. 광명시교육협력지원센터 제공
지난 14일 경기 광명시 교육협력지원센터에서 만난 운산고 1학년 이승환군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군은 올여름 광명 지역 중고생 4명과 함께 ‘커뮤니티 매핑’(이하 커맵)을 활용해 거리 미관을 해치는 쓰레기 문제 해결에 몰두했다. 커맵은 ‘공동체 참여 지도 만들기’라는 의미로, 특정 주제에 대한 정보를 공동체 구성원들이 직접 수집하고 지리정보 플랫폼을 활용해 온라인 지도로 만들어 공유하고 이용하는 과정을 말한다.
참여 학생들은 등하굣길, 학원을 오가는 시간을 쪼개 마을 곳곳을 돌며, 쓰레기 투기 발생 지역 사진을 촬영하고 지도에 좌표를 찍었다. “커맵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마을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지도를 만들어보니 상가와 주택가, 공원 등 지역마다 투기하는 쓰레기 종류와 양이 다 다르더라고요.”
참여 학생들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지역 특성에 맞는 디자인을 접목한 쓰레기통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했다. 깔때기를 설치해 남은 음료수와 컵을 분리 배출하는 독특한 모양의 쓰레기통이었다. 커맵 플랫폼에 접속하면, 위치 정보와 함께 현장 사진, 투기 쓰레기의 종류도 볼 수 있다. 경기꿈의학교 참여 단체인 ‘청진기’ 윤여진 대표가 이들을 지도했다. 윤 대표는 “아이들이 스스로 논의한 뒤 현장조사를 거쳐 대안을 찾고 결과물까지 만들었다. 자기들 아이디어를 광명시 주민참여예산에 반영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 광명동초 학생들이 마을 주요 길을 직접 둘러보며 ‘우리 마을 안전지도’를 만들고 있다. 광명시교육협력지원센터 제공
NO 담배 구역 · 채식가능 식당 등 주제별로 좌표
광명시교육협력지원센터는 ‘광명형 마을교육과정’을 통해 지난해 시범사업에 이어 올해 19개 커맵 활용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학교와 단체 등 20여곳 930여명이 참여했다. 광남중 환경동아리(참여자 13명)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개인용기에 알맹이만 담아 갈 수 있는 상점 ‘용기내 가게’ 지도를, 하안북초 학생 53명은 도서관 등 어린이·청소년 성장 지원을 위한 지역 내 주요 시설과 기관 40여곳을 정리한 ‘학생 성장 통합지도’를 만들었다. 또 초등 보건교사 8명은 학생들과 협업해 ‘노담(NO담배)지도’를 만들었고,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과 부모가 함께 ‘채식 가능 식당 지도’를 제작했다. 모두 ‘우리 동네만의 지도’다.
자유학기 주제 선택으로 커맵을 활용한 경우도 있다. 소하중 1학년 학생 56명은 한 학기 동안 ‘커맵을 활용한 식생활 실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교급식 잔반 처리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어떤 방식으로 잔반량을 수치화하고, 지도로 보여줄 수 있을지를 놓고 고심이 컸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잔반량을 측정하고, 이를 탄소 배출 측정값으로 계산해 수치화하는 묘수를 찾아냈다.
“데이터로 보여주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학내 변화는 엄청 컸습니다. 커맵을 공유해 학생회와 함께 잔반 줄이기 캠페인을 펼쳤고, 학생과 학부모의 제안 급식이 반영되기도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공동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 방법을 찾고, 바꿔보려는 과정에서 ‘시민성’을 함양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도담당 김현숙 교사의 소회다. 소하중은 모든 학생이 커맵을 활용한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커맵 플랫폼을 별도로 구매했다.
광문초 등이 참여해 만든 커뮤니티 매핑 지도. 배수구를 막는 주요 담배꽁초 등 이물질 현황을 조사하고, 이를 지도로 만들어 공유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경기꿈의학교 ‘청진기’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커뮤니티 매핑에 참여한 학생들이 주제를 설정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 등을 논의하고 있다. 광명시교육협력지원센터 제공
본질은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소통…공동체 회복 초점
지난해 첫 시범사업으로 ‘담배꽁초 커맵’을 지도했던 광문초 김상준 교사는 커맵 지도교사들의 조력자(멘토)다. 담배꽁초 커맵은 배수구 위치와 이물질 상태, 주변 환경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다. 도로 등에 설치된 배수관에 담배꽁초 등 이물질이 끼어 제구실을 못 해 종종 침수 피해가 발생하는 점에 착안했다. 김 교사는 “마을 단위를 넘어 광명시 전체에서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재난 상황 대비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커맵의 본질은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소통이다.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동기 부여를 통해 연속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