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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민통선의 가을, 환경·건강 챙긴 ‘유기농 배’가 자란다

등록 2022-10-19 07:00수정 2022-10-19 09:15

[현장] 파주 민통선 유기농 배 농장 가보니
농약·화학비료 안 쓰고도 튼실
전량 학교급식 납품 ‘판로 숨통’
기후위기·먹거리주권 대응 차원
정부 유기농 확대 적극 지원해야
김상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이 경기 파주시 군내면 민간인출입통제선 안 배 농장에서 노랗게 익은 유기농 배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경만 기자
김상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이 경기 파주시 군내면 민간인출입통제선 안 배 농장에서 노랗게 익은 유기농 배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경만 기자

기후·식량위기 시대에 대비해 경기 파주의 친환경 농업인들이 유기농 배 재배로 건강과 환경이란 두마리 토끼잡이에 나섰다. 경기도에서는 파주 9곳을 포함해 11개 시·군 27개 친환경 농가가 유기농 배를 재배하고 있는데, 생산된 배는 경기도 내 학교급식과 어린이·임산부용 꾸러미 등으로 전량 공급되고 있다.

지난 13일 파주 군내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자리한 김상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의 농장에는 노랗게 익은 유기농 배가 봉지에 싸인 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화학비료나 농약, 생장조절제 등 합성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거름과 미생물 등 천연자원만으로 키운 배나무는 튼실해 보였다. 동행한 양태규 파주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 과수분과 회장은 “깍지벌레로 피해를 본 농가가 일부 있지만 올해는 기후가 좋아 배 작황이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파주 유기농 배 재배는 파주친농연이 학교급식 운동을 벌이던 10여년 전에 본격화됐다. 김 회장은 “초기엔 모두가 화학비료 없이 배 재배가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농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저농약, 무농약을 거쳐 유기농으로 전환에 성공했다. 생산량이 적게 나와도 사전 계약재배로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두었던 덕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기농 배는 관행농법으로 배를 키우는 과수농가에 견줘 90%까지 수확이 가능하며, 학교급식 등 계약재배로 가격은 30% 정도 더 받는다고 한다.

유기농 배의 성공은 친환경 농업인과 전문가의 재배기술 향상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바탕이 됐다. 농민들은 작목반을 꾸려 미생물과 거름 생산, 전지 방법 등 각자의 재배 노하우를 공유했고 농촌진흥청은 작물에 치명적인 균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내 농가에 보급했다. 특히 송장훈 농촌진흥청 배연구소 연구관은 균 침투 시기에 맞춰 유황을 살포하는 병해충 방제법을 개발해 유기농가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김상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왼쪽부터)과 양태규 파주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 과수분과 회장, 전환식 임진강 6·15사과원 대표가 지난 13일 파주시 군내면의 배 농장에서 유기농 과수 재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경만 기자
김상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왼쪽부터)과 양태규 파주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 과수분과 회장, 전환식 임진강 6·15사과원 대표가 지난 13일 파주시 군내면의 배 농장에서 유기농 과수 재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경만 기자

김 회장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은 국민의 건강뿐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농법이라고 말한다. 한 국외연구에 따르면 유기농업은 관행농에 견줘 에너지를 45% 적게 사용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2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친환경농업 육성 5차 계획’을 통해 2025년까지 친환경농업 인증면적 비율을 1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사과 등 과수부문 유기농 재배는 아직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전환식 임진강6·15사과원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몇 농가와 함께 유기농 재배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병해충을 피할 수 없어 큰 손해를 입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친환경 과수작물 확대를 위해 국가 차원의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를 상대로 한 교육·홍보도 절실하다. 김 회장은 “어렵게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소비자들은 뭘 먹는지도 잘 모르고 심지어 불신하는 경향까지 있다. 국민들에게 농산물 생산 정보를 제공해 스스로 가치를 인식하고 먹거리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현기 ‘임진강∼디엠제트(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민통선과 임진강 유역, 한강 하구권 등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생태서비스직불제를 시행해 농가들을 친환경농업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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