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에서 학생들이 ‘정서 멘토링’ 수업을 듣고 있다. 손지민 기자
중·고등학생 5명이 앉아 있는 교실에서 선생님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노래로 표현하는 ‘인사송’이다. 음악으로 표현하면 조금 더 쉽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15분을 자세히 설명한다. 수줍은 듯 조용히 앉아 있던 아이들은 조금씩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양손을 흔든다.
“전 도도한 사람이요”, “전 예술가요”. 아이들은 각자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노랫말에 넣는다. 지능지수가 지적장애 기준보다는 높지만, 평균보다는 낮은 ‘경계선 지능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 중구에 있는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의 지난 5일 ‘정서 멘토링’ 수업 풍경이다.
경계선 지능인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Ⅳ)상 지능지수가 70~84 사이인 사람을 말한다. 지능지수 69 이하면 지적장애로 분류한다. 경계선 지능인은 학교에선 ‘느린 학습자’라 불린다. 장애 등급은 나오지 않지만 사회성이나 학습능력 등이 평균보다 뒤처져 어려움을 겪는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경계선 지능인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있는 지표는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능지수 정규분포 등을 고려해 전체 인구의 13.6%가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 이 센터에는 117명의 경계선 지능 청소년과 청년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경계선 지능에 대한 징후는 빠르면 영유아기부터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유치원에 등원해 또래들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디고 느린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모르고 지나간다. 본격적으로 징후가 눈에 띄는 시기는 초등학교 1~2학년부터다. 또래 친구들이 경계선 지능 아동과 자신의 차이점을 느끼고 놀리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또래관계의 문제가 점점 부각된다. 함께 놀이를 할 때 경계선 지능 아동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1학년 때 배운 내용을 3학년 때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중학교로 진학하면 따돌림을 겪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학교폭력과 성폭력, 성매매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서울특별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에서 학생들이 ‘정서 멘토링’ 수업을 듣고 있다. 손지민 기자
센터의 주요 목표는 경계선 지능인에게 심리적·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이다. 따돌림을 겪고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누군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 힘을 기울인다. 이교봉 센터장은 “상처받아온 아이들에게 10회, 20회 지능 관련 수업을 한다고 발달에 변화가 크게 생기지 않는다. 그보다 정서적인 안정이 우선될 때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정서적인 안정을 갖길 원한다. 정서 멘토링을 들으러 온 주현아(가명·14)양의 어머니 장수연(가명·40대 중반)씨도 딸이 그동안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친구와 소통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또래와 소통이 어려워지고 따돌림을 겪었다”며 “그동안 저희 아이 탓이라 생각 못 했다. 진단을 받고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이젠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주고 싶어 센터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이 심리적 안정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유튜브 ‘경계를 걷다’ 운영자인 특수교사 이보람씨는 “또래관계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다보니 2차적으로 심리적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러면 중·고등학교 즈음부터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한다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될 위험이 있다”며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아직 미미하다. 2016년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에서는 경계선 지능 학생을 ‘학습 부진아'의 정의에 포함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지난해 9월 제정돼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기초학력 보장법’에서는 ‘학습지원 대상 학생’을 정의해 맞춤형 교육의 근거를 만들었다. 그러나 명확하게 경계선 지능인을 대상으로 정하지 않은데다 교육 현장에서 경계선 지능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실질적인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가 2020년 지자체 중 처음으로 경계선 지능인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제도적 틀은 만들고 있으나 재원 부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권중석 서울시 평생교육과 평생교육사업팀장은 “지자체 조례만으로는 아직 한계가 있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법이 생겨서 재정 지원 등이 강화돼야 한다”고 짚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