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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둘러친 농수로, 개구리들의 무덤 됐다

등록 2022-08-15 18:39수정 2022-08-16 16:14

[현장] ‘생명체 무덤’된 파주 들판 수로
농어촌공, 2020년부터 ‘개선’ 사업
수원청개구리 3년째 안 보여
환경단체 “높아서 못 빠져나와”
당국 “안전펜스 등 대책 마련”
폭 4.5m, 깊이 2m가량 규모의 대형 콘크리트 농수로가 최근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판에 조성됐다. 박경만 기자
폭 4.5m, 깊이 2m가량 규모의 대형 콘크리트 농수로가 최근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판에 조성됐다. 박경만 기자

집중호우가 수도권을 할퀴고 지나간 지난 11일 오후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판.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득하고 농수로에는 백로 10마리가 노닐다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올랐다. 자연의 정취가 묻어나는 듯한 풍경이지만 속살은 그렇지 않다.

올해 봄까지만 해도 있던 흙을 쌓아 만든 자연형 농수로는 폭 4.5m, 깊이 2m가량 규모의 콘크리트 농수로로 바뀌어 있었다. 한국농어촌공사의 배수로 개선 사업에 따라 마정리 들판의 자연형 농수로는 2020년 가을부터 순차적으로 콘크리트 농수로로 바뀌기 시작해 올해 봄 거의 마무리됐다. 자연형 농수로에서 서식하던 수원청개구리와 금개구리, 뜸부기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콘크리트 농수로 곳곳에는 뭉쳐진 토사 위에 풀이 수북했다.

■ 개구리, 울음을 멈추다

농수로 개선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제기된 환경 생태계 파괴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개선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환경단체들은 수원청개구리 등 국제보호종으로 분류되는 멸종위기 생명체들이 생존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자연형 농수로는 수원청개구리, 금개구리, 맹꽁이, 뜸부기 등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은신처이자 쉼터로 사용하는 중요한 공간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수원청개구리와 금개구리는 각각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1급, 2급 생물이다.

한때 수원청개구리의 가장 건강한 서식지로 꼽혔던 월롱면 들판에서는 3년째 수원청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끊겼다고 파주환경운동연합은 전한다. 실제로 지난해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노선의 멸종위기 양서류를 포획해 이주시킬 때에도 월롱면 구간에서는 수원청개구리가 한마리도 포획되지 않았다. 수원청개구리가 모습을 감춘 지 꽤 오래됐다는 얘기다.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판에 최근 조성된 콘크리트 농수로에 토사가 퇴적돼 풀이 수북이 자라고 있다. 박경만 기자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판에 최근 조성된 콘크리트 농수로에 토사가 퇴적돼 풀이 수북이 자라고 있다. 박경만 기자

■ 농수로는 멸종위기 생명체의 무덤

직각의 거대한 콘크리트 배수로는 개구리의 무덤이기도 하다. 논에서 노닐다가 수로에 빠진 생명체들이 빠져나오기 어려워서다. 양서류뿐만 아니라 고라니 등 포유류도 한번 빠지면 탈출하기 어려울 정도의 높이다. 지난달부터 마정리 들판에서 콘크리트 수로 조사를 이어가며 개구리 사체 수십마리를 확인한 노현기 환경운동연합 자연생태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허파 호흡을 하는 개구리는 물에 오래 빠져 있으면 살 수 없어요. 콘크리트 농수로는 야생생물뿐만 아니라 사람한테도 위험천만합니다.” “(농수로 안) 탈출용 경사로도 간격이 너무 멀고 물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돼 있어 수로에 빠진 개구리들이 탈출하기 쉽지 않아요.”

실제 노 위원은 지난달 8일 마정리 양수펌프장 인근의 폭·깊이 각 1m의 농수로 12m 구간에서 수로에 빠져 허우적대는 개구리 57마리를, 같은 달 17일엔 같은 장소에서 개구리 사체 3마리를 포함해 42마리를, 인근 농막 옆 농수로에서 사체 1마리 포함 61마리의 개구리를 확인했다. 또 24일엔 펌프장 쪽 수로에서 32마리, 이달 7일에는 사체 1마리 포함 10마리를 목격했다.

이에 대해 농어촌공사 쪽은 “배수로에 빠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내년에는 수로변 안전펜스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담당자도 “실태조사를 통해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의 피해방지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후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판에 조성된 콘크리트 농수로 너머로 북한 쪽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박경만 기자
지난 11일 오후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들판에 조성된 콘크리트 농수로 너머로 북한 쪽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박경만 기자

■ 사전 환경영향평가 건너뛴 농수로 공사

농수로 공사가 멸종위기종 생물의 생존 위기를 불러온 배경에는 제도적 맹점이 자리잡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개선작업 초기부터 우려를 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농어촌정비법에 따른 배수 개선이나 재해대비 수리시설 개보수 사업 등에 해당하는 농수로 공사는 그 규모와 상관없이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농어촌공사 파주지사 관계자는 “농수로 개선 사업은 농경지 침수 피해가 큰 지역을 대상으로 주민 동의를 받아 진행하는 사업이다. 대단위 개발이 아니라 기존 수로를 흙에서 콘크리트로 바꾸는 사업이라 환경에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노현기 위원은 “애초에 위험천만한 콘크리트 배수로가 아니라 자연형 농수로를 유지·관리하는 데 예산을 더 편성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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