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카드를 병기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서울시 제공
강남역 8억7598만원, 시청역 7억638만원, 건대입구역 6억4929만원.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역에 이름을 함께 쓸 민간기업체를 공모하며 제시한 지하철역 감정평가액이다. 세 곳 모두 역 이용객이 많기로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다. 현재 가장 비싼 역은 을지로3가역으로 신한카드가 8억7000여만원을 내고 3년간 이름을 함께 쓰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5일 “공사 재정난 극복을 위한 부대수입 차원에서 서울 지하철 1∼8호선 내 50개 역의 역명 병기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공개경쟁 입찰 형태로 이뤄지는 이 사업은 공사가 외부 감정평가기관에 의뢰해 산출한 역명 병기 평가금액을 기초로 그 이상을 써낸 사업자 가운데 최고가를 써낸 사업자가 낙찰받는 방식이다. 써낸 금액이 높다고 다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입찰 기관이나 사업체 위치가 해당 역에서 1㎞ 거리 안에 있어야 하며,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훼손하거나 서울교통공사 이미지를 저해할 우려도 없어야 한다. 유흥업이나 고리대부업, 사행산업 같은 경우가 ‘요주의 업종’이다. 공사는 ‘역명 병기 유상판매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입찰자는 걸러낼 방침이다.
이번에 역명 병기 사업 대상이 된 50곳은 현재 병기 사업이 시행 중인 33곳 가운데 8월에 계약 기간이 끝나는 8곳에 새로 42곳을 추가한 것이다. 오는 7일 입찰공고를 내어 늦어도 8월부터는 역명 병기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하반기엔 75개 지하철역이 기업체 등의 이름을 병기하게 된다. 계약 기간은 3년으로, 한 차례에 한해 3년간 연장할 수 있다. 현재 역명 병기 사업이 시행 중인 곳 가운데 낙찰액이 가장 비싼 곳은 을지로3가역으로 ‘신한카드’가 8억7000만원을 넘게 냈다.
서울교통공사 쪽은 역명 병기 사업을 확대하는 이유를 “적자보전”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지하철 요금 동결 등의 영향으로 공사는 해마다 1조원 안팎 적자를 내는데, 부대사업을 통해 적자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겠다는 것이다. 공사 관계자는 “일부가 유찰되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역명 병기 사업으로 올해 40억원가량 수익이 예상된다. 하반기에 50개 역을 추가하면 경영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때인 2016년부터 역 이름에 사업체 등의 이름을 병기하는 사업을 해 왔다. 하지만 공공의 공간인 지하철역 이름 한쪽에 사기업체 이름을 병기하는 사업이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논란도 계속됐다. 서울시는 준공영제로 운영하며 연간 6900억원대 적자를 내는 시내버스의 400여개 정류장에도 이름 병기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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