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서울 성북구 인디학교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 인디학교 제공
하늘이(가명·서울 서대문구)는 9살에 소아암 진단을 받았다. 잦은 치료와 후유증 때문에 결석이 많아지면서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을 따라가기도,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버거워졌다. 중학교 생활을 포기해가던 15살 무렵 하늘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서울 마포구 미인가 대안학교 ‘캔틴스쿨’을 찾았다. 그곳에는 백혈병, 뇌종양 등을 앓고 있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국영수’를 앞세우는 교사가 없었다. 캔틴스쿨 이상희 교사는 “처음에는 엄마 손에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기 전 3년 동안 하늘이가 친구를 사귀고 수업 중 발표에 나서는 등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 여기였다”고 말했다.
하늘이가 마지막 삶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캔틴스쿨은 기부금·학비와 함께 서울시 지원을 받아 운영된 미인가 대안학교 중 하나다. 서울시는 2001년 대안교육센터를 만들고 2012년엔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조례’를 제정해 미인가 대안학교에 급식비·교육활동비·교사인건비 일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서울시 대안교육기관 지원 조례’를 제정해 지원 규모를 확대했다. 지난해 서울시는 미인가 대안학교 58곳에 급식비·교육활동비·교사인건비 등으로 1억∼1억8천만여원씩 총 80억여원을 지원했다.
현재 교육부가 파악한 전국 미인가 대안학교는 300곳가량으로 특수학교 적응조차 쉽지 않은 장애 청소년, 발달장애 청소년, 학교폭력·따돌림 피해 청소년 등 다양한 상황에 맞춰 특화돼 운영 중이다. ‘삼각산재미난학교’ ‘성미산학교’ 등 교육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곳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대안학교는 정부와 교육청 등으로부터 1인당 1년에 최소 900만원 이상 재정지원을 받는 일반학교와 달리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서울시가 지원에 나선 이유다. 2020년 3월 서울연구원이 내놓은 ‘서울형 대안학교 지정기준 마련 방안’ 보고서를 보면, 서울시에서 학교를 나오는 청소년 수는 매해 1만여명으로, 유학 등 해외 출국으로 인한 학업중단 학생 수를 제외하면 연간 4500여명(2018년 기준)이다.
그런데 기존 학교들이 품지 못한 학교 밖 청소년들의 둥지가 돼줬던 미인가 대안학교들이 최근 혼란에 빠졌다. 서울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게 됐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20년 12월 미인가 대안학교 설립·운영과 관련한 법적 공백을 없애기 위한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대안교육기관법)이 국회를 통과해 올해 1월13일부터 시행됐다.
과거 미인가 대안학교는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교사 채용 때 응시자들의 성범죄 전력 등을 조회하기도 어려웠고, ‘학교’라는 이름을 썼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폐쇄 위기에 몰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따라 대안학교 구성원은 물론 학생·학부모들까지도 양성화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안교육기관법 시행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5∼6월 대안교육기관 등록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미인가 대안학교가 등록되면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하지만 서울시는 “서울시교육청에 등록한 대안교육기관에는 재정지원을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을 받고 관리·감독하는 주체가 교육감인 만큼, 일반학교처럼 대안학교 재정지원도 교육청 소관이라는 논리였다.
서울시는 지난해 교육청에 요청해 실무진 차원에서 재정지원 방안을 논의했지만 교육청이 ‘지원 근거가 없고 재정도 없다’며 미온적으로 반응했다고 설명했다. 이대현 서울시 평생교육국장은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할 수도 있는데 (안 하고 있는 것은) 교육청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곽윤철 서울시교육청 상담대안교육팀 장학관은 “대안교육기관법은 (지원이 아닌) ‘등록’에 관한 내용만 있다”며 “법은 1월부터 시행되지만 하반기부터 등록이 이뤄지기 때문에 올해까지는 서울시가 계속 지원할 줄 알았다. 올해는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앞으로 서울시와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데, 시는 등록기관이 아닌 곳만 지원하겠다고 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대안교육기관 지원 논의를 위해 서울시·서울시교육청·대안교육기관 3자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서울시는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미인가 대안학교들로서는 시교육청에 등록하자니 서울시 지원이 끊기고, 서울시 지원금을 받자니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법외 학교’로 남아 있어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 셈이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대안학교 ‘인디학교’ 송민기 교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 학교는 취약계층 아이들이 다니고 있어 수업료가 무상인데 지원금이 끊기면 운영이 어렵게 된다”며 “법적 지위가 바뀌면 예산을 못 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안학교들 사이에 등록을 안 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대립하게 된 근본 원인은 대안교육기관법 자체에 있다. 제3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은 있는데, 여기서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청’을 뜻하는지 ‘교육청 및 지자체’를 뜻하는지 모호해 둘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최초 법안엔 운영경비와 급식비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는 조항이 있었지만, 국회 교육위 심사 과정에서 관련 내용이 삭제된 점도 문제다.
2020년 11월24일 국회 교육위 회의에서 정경희 의원(국민의힘)은 “대안학교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사립학교 아닙니까?”라며 급식비 등 지원 조항을 두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박백범 당시 교육부 차관이 “일반 사립학교도 100% 운영비, 인건비를 국가에서 다 지원하고 있다. 똑같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데, 자녀들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경우에는 지원을 일체 못 받고 상황”이라고 설명했지만, 정 의원은 “명칭은 대안학교로 해서, 국가가 다 지원해주면서, 일반학교와 대안학교의 차이가 뭐냐고요”라며 재정지원 조항 삭제를 강력하게 주장해 관철했다. 보수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출신인 정 의원은 “제주4·3은 좌익 폭동” 등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서울시교육청 책임도 있다. 국회 의견수렴 과정에서 교육청은 공교육 이탈을 더 가속화시킬 수 있고, 재정지원 조항이 들어가면 예산 부담이 갑자기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전달했다. 시교육청이 뒤늦게 ‘3자 협의체’를 가동하자고 나섰지만, 법안 논의 과정에선 미인가 대안학교 지원에 소극적이었고 법안 통과 뒤엔 문제가 심각해지도록 방치해둔 셈이다.
평행선을 달리는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사이 충돌은 다른 광역단체와 교육청, 전국 300여곳 미인가 대안학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안학교를 지원하는 다른 시나 도에서도 똑같은 충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장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각산재미난학교’ 김효숙 교사는 “미인가 대안학교의 법적 지위가 이제 생겨난 것이라 교육부도 한번에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며 “과도기이기 때문에 결국 (구조적으로는) 교육부가 재정지원 문제 등을 풀어야 하고, 당장에는 서울시·서울시교육청이 협의에 나서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시와 교육청이 제대로 얘기를 주고받지 않고 서로 일방적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피해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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