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10월 말 역사관 남쪽 사형장 인근 ‘통곡의 미루나무’를 보존 처리하면서 촬영한 모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공
1923년 일제는 서대문형무소 남쪽 끝 사형장 근처에 미루나무를 심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독립투사들이 조국 독립을 끝내 보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순간 이 나무를 부여잡고 울었다고 해서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을 품은 미루나무가 100년 수령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풍에 넘어진 건 지난해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쓰러진 미루나무를 소독·보존 처리해 상설전시로 시민에게 공개한다고 24일 밝혔다. 미루나무 전시는 지난 10월 말 작업을 시작해 23일 표지판 설치 작업까지 마쳤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미루나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문가·주민들과 논의하다가, 누운 모습 그대로 시민에게 공개해 사형장의 역사와 아픔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무가 자리를 지킨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는 송학선, 엄순봉, 채경옥 등이다.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생을 마친 독립투사는 4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루나무가 제자리를 지키는 사이 1908년 10월 문을 연 서대문형무소는 1987년 11월까지 감옥으로 쓰이다가, 1998년 11월 역사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통곡의 미루나무가 한 그루는 아니었다. 이번에 전시된 미루나무는 사형장 담 ‘바깥’에서 자랐다. 사형장 안뜰에서 바깥 나무와 형제처럼 자란 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다. 담 밖 나무가 때마다 무성하게 잎을 틔웠다면 담 안 나무는 어느샌가 점점 고목이 돼가다 2017년 봄 결국 고사했다. 하지만 일제가 심은 미루나무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박 관장은 “다행히 몇년 전 기존 미루나무 뿌리에서 자생한 아기 미루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며 “형무소가 품은 역사를 새롭게 이어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손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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