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 앞에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내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이 임박했지만, 시·시의회 협의에는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한다. 이런 경우 단체장이 나서서 시의회 쪽과 물밑 대화를 나누고, 타협을 끌어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세훈 시장은 보이지 않는다. 시의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를 비판하면서도 대화를 제의한 23일에도, 오 시장은 “장충리틀야구장을 다녀왔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을 뿐이다.
예산에 대해 오 시장은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언론 인터뷰와 페이스북 글을 종합하면 ‘전임 시장 때 시정을 바로잡아야 한다.(①) 그런데 시의회 다수당이 더불어민주당이다.(②) 시의회의 예산 증액 요구는 재정 악화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③)’ 3단계 인식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①, ③번과 관련해서는, 물론 잘못된 게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는 재정 혁신도 필요하다. 하지만 매사 그렇듯,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오 시장은 지난달 1일 시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며 “‘서울시 바로 세우기’로 명명된 사업들과 그동안 흐트러진 재정집행을 좀 더 정교하게 시민들 삶의 질 위주로 바로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 전체 민간위탁·보조금 예산의 단 6%를 차지하는 주거복지·도시재생 등 12개 분야만 집중 감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예산을 삭감한 이유나 기준은 밝힌 바 없다. 게다가 내년 예산 규모는 전년보다 4조원가량(10%) 늘었다. 새로 편성한 서울런·뷰티서울 같은 사업들도 중복·유사 사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멋과 감성의 도시’ 사업에도 2천억원이 배정됐다.
②번과 관련해서는 시의원 110명 가운데 99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은 맞다. 하지만 지난 4월 취임 뒤 조직개편안·추가경정예산 등은 거의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그런데도 시의회 탓이더니,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는 “이른바 ‘시민단체’ 출신도 수백명이 들어와 있다. 내가 하는 말이 실시간으로 시의회에 전달된다”며 “식물시장’에 가까운 형편”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시의회는 오 시장 취임 전부터 민주당이 다수였으니, 본인 표현대로라면 식물시장이 될 걸 알고도 재보선에 출마했던 셈이다. 당시 장담했던 공약들은 뭐란 말인가. 의회와 대화 대신 현장 행보에 바쁘시다는 오 시장의 답변이 궁금하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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