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동영상으로 촬영한 사건에 대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가 선고한 벌금 70만원이 유지되고 피고인이 재상고하지 않으면 형이 그대로 확정된다.
이 사건은 2심 재판부가 “레깅스는 일상복으로 활용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직권으로 파기하면서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죄로 판단해,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의정부지법 형사2부(재판장 최종진)는 지난 2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ㄱ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했다”며 “형량은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서 너무 무겁다고 볼 수 없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같은 버스에 승차한 피해자 하반신을 몰래 동영상으로 촬영해 경위와 내용 등에 비춰 볼 때 죄질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번 재판부는 ㄱ씨의 항소 이유인 ‘1심 양형의 과중 여부'만 살폈다. 2심 재판부가 “성범죄로 보기 어렵다”고 직권으로 판단해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이미 유죄 취지로 파기한 만큼 다루지 않았다.
이 사건은 1심부터 대법에 이르기까지 유·무죄 판결이 뒤집혀 관심을 끌었다.
ㄱ씨는 2018년 버스를 타고 가다 하차하려고 출입문 앞에 서 있는 ㄴ씨의 엉덩이 부위 등 하반신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8초가량 몰래 동영상 촬영했다. ㄱ씨는 현장에서 적발돼 경찰에 검거된 뒤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ㄱ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하면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직권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인 의정부지법 형사1부는 ㄱ씨의 행위가 성범죄에 해당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심리했다. 2016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피해자 옷차림, 노출 정도, 촬영 의도와 경위, 장소·각도·촬영 거리, 특정 신체 부위 부각 여부 등을 살폈다. ㄴ씨는 당시 엉덩이 위까지 내려오는 다소 헐렁한 어두운 회색 운동복 상의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레깅스 하의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외부로 노출되는 부위는 목 윗부분과 손, 발목 등이 전부였다. ㄱ씨는 출입문 맞은편 좌석에 앉아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통상적으로 시야에 비치는 ㄴ씨의 뒷모습을 촬영했으며 엉덩이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레깅스가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는데 주목했다.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며 “피고인의 행위가 부적절하고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도 무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이 이 사건을 다뤘고, 3심인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ㄱ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2심을 유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는 게 무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불법촬영 성범죄 대상이 반드시 노출된 신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개성 표현 등을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스스로 신체를 노출해도 이를 몰래 촬영하면 연속 재생, 확대 등 변형·전파 가능성 등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번 판결은 특히 성적 자유를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에서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로 확대해 해석하고 처음으로 명시해 관심을 끌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