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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주인공이라면서…왜 바비인형 상자 같은 대기실에 두죠?”

등록 2021-09-06 16:48수정 2021-09-07 02:04

서울시, 바꿔야 할 결혼·장례문화 에세이 선정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카드뉴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카드뉴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신부는 왜 바비인형 상자 같은 대기실에 있나요?”

불편하지만 ‘까다로워 보일까 봐’ 혹은 막연하게 ‘전통이겠거니’ 하고 따랐던 결혼·장례 문화. 남성만 상주를 맡아야 하거나 아버지가 딸의 손을 사위에게 넘겨주거나 하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면서 성차별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득실대고 있다. 결혼·장례의 본질적인 의미는 살리면서도 악습과는 결별할 방법은 없을까.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가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시민 에세이 공모전’을 해, 6일 수상작 21편을 발표했다. <한겨레>가 수상자들의 에세이를 살펴본 결과, 결혼식에서 여성을 결혼의 ‘주체’가 아닌 시집을 보내는 ‘객체’로 취급하는 문화가 여전했다. 연령에 관계없이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 딸의 결혼식을 치른 한 70대 아버지가 딸의 손을 사위에게 건네줄 때 느낀 불편한 감정도 소개됐다.

“딸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딸아이는 ‘내가 신랑 쪽에 물건처럼 넘겨지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신랑·신부 모두 성인인데, 친정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의 손을 건네주는 건 남성 중심 가족 문화에 기반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딸은 자신의 의지로 결혼 ‘하는’ 것이지, ‘시집 보내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수상 김아무개(72·마포구)씨)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카드뉴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카드뉴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그래도 관습을 깨고 신부의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친구의 기분 좋은 사례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인형처럼 예쁘게 치장하고 대기실에 갇혀 앉아만 있는 신부와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는 신랑의 모습. 결혼식의 꽃이자 주인공은 신부라며 치켜세우는 사회자와 보답하듯 수줍게 웃어 보이는 신부. 수동적인 모습이 그저 결혼을 맞이하는 신부의 당연한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지금까지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답답한 바비인형 상자 같은 신부대기실을 박차고 나온 내 친구가 너무 자랑스러웠다”(특별상 윤아무개(29·용산구)씨)

장례식의 경우엔 여성에게는 부고를 작성하거나 영정을 드는 일까지 금지됐다. 남성인 가족들과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대목인데, 왜 그래야 하는지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부고를 작성하러 아드님이 오라고 했다. 우린 딸만 넷이라 내가 가겠다고 하니 사위님을 보내라고 했다. 우리 자매는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아 사위가 없다고 재차 말하자 ‘정말 아들도 사위도 없냐’며 ‘요즘 그런 집들이 생겨서 자신들도 곤란하다’고 했다. 상조회사 직원 역시 상주를 찾았다. 아들도, 사위도 없으니 큰언니가 상주할 거라고 하자 ‘조카라도 계시면 그분이 서시는 게 모양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우수상 김아무개(40·서대문구)씨)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카드뉴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카드뉴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가족 누구보다도 돌아가신 할머니와 가까워 영정사진을 들고 싶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제당한 시민의 경험도 소개됐다. 슬픔을 나누고 서로 위로한다는 장례의 기본적인 의미조차 잘못된 관습으로 인해 퇴색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삼촌과 아빠가 동생에게 할머니 영정사진을 들라고 했다. 사진은 손주가 드는 거란다. 동생은 나를 보며 ‘누나도 있는데…’라고 말했지만, 삼촌과 아빠는 내 쪽을 보지 않았다. 영정사진은 내가 들고 싶었다. 몇 걸음 걷지 않는, 별거 아닌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손주가 들어야 한다면 할머니와 가장 오래 함께했고,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내가 제일 어울리지 않나?” (최우수상 양아무개(33·종로구)씨)

로리주희 센터장은 “처음에는 코로나19로 장례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점검해 보려고 캠페인 차원에서 공모전을 열었다. 아무래도 일이 닥쳐야만 고민하게 되는 장례문화에 대한 불편사례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점검해 보니 장례뿐 아니라 결혼문화도 많이 변하지 못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센터는 6일부터 시민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을 재구성한 ‘스토리 카드뉴스’를 발행하는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온라인 캠페인과 댓글 이벤트를 진행한다. 심사를 통해 재치댓글상, 감동댓글상, 참가상을 선정하여 소정의 상품도 지급한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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