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2월 국회에서 열린 주택법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공청회에서 김헌동(가운데) 당시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이 의견을 말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저격수’로 활동해온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스에이치) 사장에 공모했다가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 과정에서 에스에이치 임원추천위원회 내부회의 내용이 언론에 유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26일 에스에이치는 임원추천위를 통해 최종 사장 후보로 한창섭 전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추진단장과 정유승 전 에스에이치 도시재생본부장을 서울시에 추천했다고 밝혔다. 애초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김 본부장은 탈락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오전 <연합뉴스>는 김 본부장이 ‘시의회 추천 위원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에스에이치 임원추천위원회는 △서울시 추천 2명 △에스에이치 추천 2명 △서울시의회 추천 3명으로 구성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어떻게 이런 내용이 공개됐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기사에 틀린 내용은 없다. 시의회 추천 위원들이 낮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모직 심사 단계에서 추천위원별 평가가 언론에 공개되기는 이례적이다. 심사위원들이 누군지도 비공개다. 이에 시의회와 에스에이치는 ‘공개돼선 안 될 내용이 공개됐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이 절대다수(110명 중 100명)인 시의회가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을 저격해온 김 본부장을 못마땅하게 보고 탈락시켰다고 알려지도록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의회 관계자는 “지금껏 에스에이치 사장 추천 과정에서 추천위원이 누구인지, 어떤 위원이 어떤 점수를 줬는지가 공개된 적은 없다”며 “시의회가 추천한 위원들이라고 해서 어떤 지원자에게 몇점을 줄지까지 (시의회와) 의논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에스에이치도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우리 사장을 뽑는 일인데, 그 회의 내용을 우리가 언론에 흘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심사 과정 내용을 어디까지 서울시에 보고하는지와 관련해서는 “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도 공식적으로는 ‘모르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곽종빈 서울시 재정기획관은 “시에서 확인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2000년부터 경실련에서 활동해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 등을 맡았던 김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경실련은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상한제 등을 주장하며 에스에이치와 관련 소송을 진행하는 등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보수야당이나 보수언론과는 거리를 둬왔지만, 김 본부장은 최근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난 뒤 “부동산 부패 구조를 간파하고 있더라”며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서울시 공공주택 공급, 택지 개발 등을 총괄하는 에스에이치는 서울시민의 주거 안정 및 복지 향상을 위해 1989년 설립된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출신인 김현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사장에 내정했지만, 서울시의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4건을 보유한 것을 두고 “시대적 특혜”라고 해명하면서 논란이 일어 지난 1일 자진사퇴한 바 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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