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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떠나자 수달·삵이 뛰놀고, 원앙·조롱이가 쉬어가는 밤섬

등록 2021-06-29 14:28수정 2021-06-30 02:47

서울 마포문화재단 ‘밤섬 생태·역사적 보존가치 확산 토론회’
김승구 사진작가가 찍은 밤섬. 뒤쪽으로 여의도 빌딩 숲이 보인다.
김승구 사진작가가 찍은 밤섬. 뒤쪽으로 여의도 빌딩 숲이 보인다.

영화 <김씨표류기>의 배경이었던 서울 한복판의 무인도 밤섬엔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150여가구가 살았다. 하지만 1968년 여의도 개발을 위한 골재채취가 이뤄지며 폭파됐고, 한강 수위가 조금만 높아져도 물에 잠기곤 했다. 1986년 골재채취가 끝나자, 모래가 퇴적되고 흘러든 씨앗이 뿌리를 내려 숲이 우거지기 시작했다. 여러 들짐승, 날짐승들이 밤섬에 둥지를 틀었다.

인간이 파괴한 섬을 자연이 살린 셈이었다. 2012년 서울에선 유일하게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밤섬이 주는 역사적·생태적 울림을 널리 알릴 방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풀어보기 위해 29일 오후 마포문화재단 주최로 마포구청에서 ‘밤섬 생태·역사적 보존가치 확산 토론회’가 열렸다.

김승구 사진작가가 찍은 밤섬.
김승구 사진작가가 찍은 밤섬.

“조선 한시 속 밤섬의 옛 경관…이주민들의 애환 역사도 보존해야”

이날 ‘밤섬의 역사적 보존가치’를 주제로 발표한 박경룡 서울역사문화포럼 회장은 “조선 시대 명사들이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할 때 밤섬은 단골 소재였다”고 말했다. 조선 시대 밤섬의 경관을 시구로 읊은 명사들도 강희맹·서거정·이덕무·정약용 등 수 십명에 달한다고 한다. 또 현재 심사정의 ‘경구팔경도첩’ 등에서 조선시대 밤섬 그림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정약용의 ‘하일용산잡시(夏日龍山雜詩)’의 일부를 옮겨본다.

‘목동 젓대 한 가락이 서쪽에서 들리는데/밤섬이라 물안개가 버들가지에 이어져/보드라운 털 짐승 무리 지어 풀 뜯는데/어인 일로 조선땅에 양이 없다 일렀던고/고깃배 저물녘에 버들 가에 매였다가/한강 어귀 밀물 들자 행주로 건너가네/이 노인 그물 치는 그곳을 구경하려면/황혼 무렵 모름지기 읍청루에 올라야지’

박 회장은 밤섬 주민들의 이주 역사에도 주목했다. 1968년 2월9일 폭파 당일 밤섬에 살던 62가구는 허겁지겁 당인동의 천막촌에 입주했다. 그날 밤 주민들은 다시 강을 건너 빠트렸던 ‘부군당’의 영정과 제기부터 챙겼다고 한다. 부군당은 밤섬의 도당굿(마을 주민들이 모여 수호신에게 복을 비는 굿)이 열리는 특유의 신앙 공간이었다.

밤섬. 마포문화재단 제공
밤섬. 마포문화재단 제공

이후 주민들은 창천동(437-3호)에 부군당을 신축했지만, 당시 마포구청이 불법 건축물로 간주해 철거를 요구해 주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밤섬 출신들은 막노동·수리공·경비원 등으로 일하다가도 부군당제에는 모두 참석했다고 한다. 현재도 밤섬 출신 1, 2세가 창전동을 중심으로 100명 정도가 부군당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부군당 도당굿은 개발에 밀려 파괴된 밤섬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18살까지 밤섬에서 살았다는 지득경 밤섬보존회장은 “당시는 밤섬과 여의도와 영등포가 이어져 있었다. 여의도까지 빠른 걸음으로 30분이면 갈 수 있어 어른들 직장이 그곳에 많았다. 이주 때 한강이 꽁꽁 얼어 썰매로 짐을 옮기기도 했다”고 돌이킨 뒤 “저희 밤섬 출신들은 계속 거기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얘길 하곤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밤섬 맞은편에 있는 밤섬 공원에 기념전시관을 지어, 밤섬 관련 시와 그림을 소개했으면 한다. 이주민들의 애환 역사도 보존이 필요하다. 부군당제를 위한 공간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86년 한강종합개발이 끝난 뒤 한강 밤섬의 크기 변화. 마포문화재단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간 떠난 뒤 수달·삵이 뛰놀고, 원앙·조롱이가 쉬어가는 밤섬

이날 ‘밤섬의 생태적 보존가치’라는 주제로 발제한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학과 교수는 수년간 조사한 밤섬의 생태계에 대해 소개했다. 특히, 지난 2019년 조사에서 보호종인 수달·삵·족제비 등 포유류의 배설물이나 발자국 흔적을 찾은 사실을 소개했다. 물의 깊이나 모래톱 양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새들도 원앙, 조롱이, 쇠딱따구리, 제비 등 보호종을 비롯해 77종 9779개체(2013년 정밀 조사)가 확인된다고 한다. 또 지난해 8월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인 맹꽁이, 금개구리를 비롯해 참개구리 등 토종 양서류·파충류도 다수 확인됐다.

오 교수는 또 현재 밤섬에는 버드나무류가 47%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환삼덩굴·가시박 등 외래종들은 주기적인 제거작업으로 큰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도심에 있는 탓에 밤섬의 소음 수치는 주간 67 데시벨, 야간 62데시빌 등으로 람사르습지 소음 기준(50데시벨 이하)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서강대교·강변북로를 지나는 차들의 분진, 인공조명 등으로 인해 밤섬 생태계가 악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오 교수는 진단했다.

오 교수는 “소음이나 빛 등 수치가 다소 높긴 하지만, 밤섬은 도시 공해로부터도 자유로운 편이다. 외래식물 유입 문제는 조심스럽게 모니터링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출입 억제만으로 밤섬 보호 충분? 주변 지역까지 보호구역 확대해야”

이날 토론자로 나온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밤섬의 생태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따져보고 보존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인 작업”이라면서도 “생태와 인간활동이 무조건 병립하긴 쉽진 않다. 인간활동이 밤섬의 육화(습지가 육지처럼 변하는 현상)를 가속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밤섬과 인간활동의 적절한 거리 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도 “사람 출입 억제가 람사르습지 지정 뒤 관리의 전부가 돼선 안 된다”며 “주변 수역에서의 모터 스포츠 등으로 인한 소음 및 진동 공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섬과 그 주변으로 보호구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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