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신호등 아래로 길을 건너는 시민들. 연합뉴스
한국 운전자의 82%는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횡단보도)에서 보행자에게 양보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운전자는 7~22%에 그쳤다. 운전자들의 생각과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12일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시민 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운전자의 81.6%는 신호가 없는 건널목에서 차량을 멈추고 보행자에게 통행을 양보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교통안전공단이 전국 28곳의 신호 없는 건널목에서 이 상황을 실험해보니 보행자가 건널 의사를 표시하고 건너려고 한 경우 22.2%의 운전자만 보행자에게 양보했다. 보행자가 건널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건널목에 서있는 경우엔 단 7.0%의 운전자만 보행자에게 양보했다. 운전자들이 신호 없는 건널목에서 보행자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으나, 실제 행동으로는 거의 옮기지 않는 것이다.
교통 선진국에선 보행자 우선 원칙이 강하며, 보행자들은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경우도 많다. 브라질 쿠리치바의 한 거리. 지현호 <인간극장> 피디 제공.
또 보행자의 83.1%는 신호가 없는 건널목에서 불안을 느끼며, 67.7%는 신호가 있는 건널목에서도 불안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이들이 불안을 느낀 이유는 △신호 안 지킴 △속도를 줄이지 않음 △정지선을 넘어섬 △보행자를 보지 못함 △멈추지 않음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보행자가 가장 위험을 느끼는 곳은 △보행로-차도 구분없는 도로(43.2%) △신호등 없는 건널목(28.2%) △우회전 차량 접근하는 교차로(22.8%) 순서였다.
브라질 쿠리치바의 한 거리. 지현호 <인간극장> 피디 제공.
보행자 가운데 최근 일주일 동안 차도를 무단 횡단한 경우가 있는 사람은 32.3%로 나타났다. 보행자들은 무단 횡단의 이유로 △도로 폭이 좁아서(38.6%) △주변에 횡단보도가 없어서(24.2%)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아서(19.8%) △급해서(14.6%) 순서로 답했다.
권병윤 공단 이사장은 “한국은 보행자 안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보행자의 안전을 높이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의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법 개선과 운전자가 보행자에게 절대 양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행자 의식 조사는 지난 11월4일부터 18일까지 공단 홈페이지와 블로그 등에 들어온 시민 7617명을 상대로 이뤄졌으며, 보행자 횡단 실험은 지난 8월과 10월 전국 28곳에서 모두 910회 이뤄졌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