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말 충남 천안 일봉산 숲에서 단식 농성 중인 서상옥 천안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왼쪽).
지난 1일 오후 1시40분께 서상옥 천안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충남 천안시 일봉공원의 한 참나무 위 농성장에서 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겨졌다. 그는 일봉공원을 지키겠다며 11일 동안 단식 농성을 벌이다 탈진했다. 이어 환경운동연합은 2일 세종시 환경부 앞에서 “일봉산 민간공원특례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현재 일봉산 일대 주민들은 민간공원 사업에 대한 주민투표 청구 대리인 모집 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민투표를 위해선 유권자의 5%(2만6천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나선 이유는 천안시와 사업자가 일봉산 일대의 도시공원 40만2614㎡의 29.9%를 최고 32층의 아파트 2300가구와 부대시설로 개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70%에도 주차장과 전망대, 식물원, 체력단련시설 등을 넣기로 했다. 이른바 민간공원특례 사업이다.
주민들은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구본영 전 천안시장은 지난 11월14일 대법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선고되기 6일 전인 11월8일 기습적으로 사업자와 민간공원 사업 협약을 맺었다. 또 이곳의 개발면적 비율 29.9%가 전체 민간공원 사업 평균 개발면적 비율인 18%보다 너무 높은 것도 비판 거리다. 또한, 이곳이 이미 아파트 단지로 과밀 개발된 곳이어서 고층 아파트 2천여가구가 추가로 개발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지적한다.
차수철 일봉산지키기시민대책위원은 “주변이 이미 25개 단지, 2만가구가 사는 공동주택 과밀 지역인데, 이곳에 공원을 파괴하고 아파트를 짓는 게 말이 되냐? 의회가 주민투표를 거부해 천안 시민 5%의 서명을 받아 내년 2월14일까지 주민투표를 추진할 계획이다. 환경부엔 환경영향평가에서 사업을 부동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천안시 일봉공원은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다.
천안 일봉공원처럼 내년 7월 시행되는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멀쩡하게 사용하던 도시공원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전국에서 363.3㎢의 도시공원이 해제되며, 국공유지인 90㎢를 제외한 273.3㎢에 대해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국공유지 도시공원의 해제를 10년 유예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가운데 30㎢에서 민간공원 사업을 추진해 70%(21㎢) 이상을 공원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민간공원 사업으로 인해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일몰 예정 도시공원 25곳 가운데 9곳을 민간공원 사업으로 추진 중인 광주광역시는 수사에 휘말렸다. 중앙공원 1·2지구 사업자 선정을 두고 잡음이 일어나 검찰이 광주시 담당 국장을 기소했고, 부시장과 감사위원장을 입건했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부시장과 감사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약을 맺는 등 정상 추진에 나섰다. 하지만, 광주환경운동연합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공원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대전도 7개 민간공원 사업을 추진하다가 지난 6월까지 매봉공원, 월평공원 갈마지구, 목상공원, 행평공원 등 4곳을 취소, 불수용했다. 특히 매봉공원과 월평공원은 시민과 환경단체가 강력히 반대해 사업자와 큰 갈등을 빚었다. 대전의 일몰 예정 도시공원은 26곳이며 이 가운데 6곳은 공원 조성, 12곳은 사유지 매입, 5곳은 해제, 3곳은 민간공원으로 결정됐다. 사유지 매입에는 모두 3972억원이 들어 시는 예산 2582억원, 지방채 1390억원을 마련할 방침이다.
경남 진주에서도 지난 10월29일 가좌공원 민간공원 사업 계획이 환경과 교통 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진주시는 450억원을 들여 사유지를 사야 하는 상황이다. 애초 민간공원 사업은 공원 82만3220㎡ 가운데 10.5%인 8만6668㎡에 1632가구의 아파트를 짓고, 나머지 89.5%는 공원으로 조성하려 했다.
역시 지방정부와 시민단체가 마찰을 빚은 청주에선 협치를 통해 문제를 풀었다. 청주시는 도시공원 68곳 가운데 8곳에서 민간공원 사업을 추진했는데, 특히 핵심 공원으로 꼽힌 구룡공원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했다. 청주시는 지난해 8월부터 협치 회의를 열어 구룡공원 1구역 면적의 13%만 개발하는 방안을 지난 11월 끌어냈다.
이와 함께 청주 시민들은 스스로 도시공원을 매입하는 ‘트러스트 운동’에도 나섰다. 청주 도시공원 트러스트 등은 지난 4월부터 도시공원 매입을 위한 100억원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돈으로 청주 구룡공원 농촌방죽 일대 14만9500㎡를 사들일 참이다. 지금까지 5067만여원을 모았다. 청주는 앞서 2009년에도 두꺼비 서식지인 원흥이 방죽을 시민 모금으로 지켜냈다.
지난 11월26일 벨기에에서 유럽의 환경 운동가들이 일봉산지키기 운동에 나선 서상옥 사무처장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는 사진을 보내왔다.
일몰 예정 도시공원 조성의 모범적인 사례는 서울과 전주다. 서울시는 이미 2018년 4월 1조 3천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일몰 예정 도시공원 가운데 핵심 사유지 2.33㎢를 매입하기로 했다. 매입하지 못한 공원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우선 지정한 뒤 중장기로 모두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일몰 예정 도시공원 117.2㎢ 가운데 25.3㎢는 도시계획시설(공원)로 유지하고 67.5㎢를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한다. 앞서 서울시는 2002년부터 1조9천억원을 도시공원 보상에 투입해왔다.
전북 전주시도 최근 일몰 예정 도시공원 15곳, 14.5㎢를 지방채 3500억원가량을 들여 모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열악한 지방 재정에도 공원 전체를 매입하겠다는 전주시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중앙정부가 2600억원을 들여 21㎢ 정도의 핵심 부지만 매입해도 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과거 도시공원 지정을 주도한 중앙정부가 그 해제에 대해 지방사무란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 이제라도 핵심 부지 매입에 나서고, 나머지 공원에 대해선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스스로 풀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김용희 송인걸 오윤주 최상원 채윤태 박임근 기자
che@hani.co.kr, 사진 환경운동연합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