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군내면 비무장지대 안 대성동마을의 김동구 이장이 지난 12일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열린 ‘디엠제트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포럼’에서 대성동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완전하게 종료되고 평화가 정착돼 이웃인 북한의 기정동마을과 자매결연을 하고 주민들끼리 활발하게 왕래하고 교류하며 살고 싶습니다.”
남한 비무장지대(DMZ) 안 유일한 민간인 마을인 경기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마을의 김동구(51)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12일 경기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열린 ‘디엠제트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포럼’에서 자신의 마을을 소개하면서다. 올해로 8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상상도 못 하던 상황이 전개되곤 하니 마을 주민들의 상상이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인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달 30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당시 “남북미 정상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는 동안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며 “당장 내일이라도 종전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반긴 바 있다.
대성동마을은 군사분계선에서 4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주민은 47가구 190명(남 93, 여 97명)이다. 주로 벼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군사분계선 북쪽에 마련된 북한 기정동마을과의 거리는 불과 800m다. 두 곳은 1953년 정전협정에서 비무장지대에 남북이 각 1개씩 민간인 거주 마을을 두기로 합의하면서 생긴 남북의 최전방 마을이다. 두 마을에는 각각 국가를 상징하는 99.8m 높이의 태극기와 160m 높이의 인공기가 내걸려 있다.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규제를 받지만 유엔사령부 통제 아래 있어 1969년에야 주민등록증이 발급돼 참정권이 주어졌으며, 국방·납세 의무를 면제받는다.
지난 12일 경기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열린 ‘디엠제트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포럼’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거주 조건도 까다롭다. 정전 당시 행정구역상 주소를 둔 사람만 살 수 있으며, 이곳 주민과 결혼한 여성은 살 수 있지만 다른 지역의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떠나야 한다. 김씨는 “밖에서 시집온 여성들은 두려움과 외로움에 한 달 안에 100% 우울증이 걸릴 정도다”라고 말했다.
국방·납세 의무를 면제받는 특혜도 있지만 일반 국민과 달리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주민들은 집을 나서거나 들어올 때 군부대에 신고해야 하며 여러 개의 검문소를 거쳐야만 집에 올 수 있다. 매일 저녁 일일점검을 받고, 농사일하러 논에 갈 때도 무장군인과 동행해야 한다. 야간에는 1시간 단위로 마을 출입이 가능하며 매일 자정부터 해가 뜰 때까지 통행이 금지된다. 김씨는 “전쟁이 터지면 3분 안에 전멸하므로 항상 긴장하며 살아왔다. 무슨 일만 있으면 대피소로 나가 지낸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래도 조상묘가 있고 태어나서 자라온 터전이라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17년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평균 50~60데시벨(dB)의 대남방송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주택이 주민 삶보다 선전마을 위주로 지어져 북에서 보이는 전면에 타일을 붙였는데, 타일이 스피커 구실을 해서 창문이 흔들리며 소리가 집안으로 들려오는데 정말 사람이 살 수가 없었다.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에 멍한 모습으로 일하러 나가는 주민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지난 12일 경기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열린 ‘디엠제트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포럼’에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토론하고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 등이 디엠제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김씨는 “디엠제트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 마을이 상업화되고 지금까지 지켜온 대성동 마을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주민들이 빈부 격차 없이 마을을 지키면서 기정동마을 주민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포럼은 경기도가 디엠제트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앞서 주민과 공감대를 확산하고자 마련됐다. 박은진 국립생태원 경영기획실장의 기조강연과 파주·연천 접경지역 주민 대표 8명이 사례 발표를 했다.
연천/글·사진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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