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 구 묘역 들머리엔 전두환씨 기념비. 임의진 목사가 지난 달 초 찍은 사진. 일부 글씨가 마모됐다.
보존 대 응징. 5·18 옛 묘역 등 광주에 남아 있는 ‘전두환 기념물’이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광주 북구 망월동 5·18 옛 묘역 들머리엔 전두환씨 기념비가 땅에 묻혀 있다. 1982년 3월10일 광주를 방문한 전씨 부부가 광주에서 묵지 못하고 인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숙박하고 난 뒤 세운 기념비다. 광주전남민주동우회는 1989년 1월 이 비석을 부숴 5·18 넋들이 묻혀 있던 옛 묘역 앞에 묻었다. 안내문엔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달라”고 적혀 있다.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가 조성된 뒤에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주검이 묻힌 5·18 옛 묘역을 찾은 추모객들은 이 비석을 밟고 지나갔다.
그동안 추모객들의 발길에 급속한 마모가 이뤄지자 보존 여론이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시인 겸 화가인 임의진 목사는 “전씨 비석을 옮겨와 깨 묻었던 스토리가 있지만 (이 비석은)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5·18 시민군 출신 한 인사는 “동의할 수 없다. 밟으며 응징하는 것도 역사적 교육”이라고 반박했다.
최근 광주 서구 치평동 5·18자유공원으로 옮겨진 11공수특전여단 전두환 기념석 처리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5·18 무력진압에 참여했던 11공수여단이 1983년 강원도 화천군에서 전남 담양으로 부대를 이전하면서 세운 이 기념석에는 ‘선진조국의 선봉 대통령 전두환’이라 적혀 있다. 이 기념석은 지난달 16일 광주시로 소유권이 넘어와 5·18자유공원으로 옮겨졌다. 5·18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지난 3일 이 기념석을 관람객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공원 들머리 땅에 묻으려던 계획을 일단 유보했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 자유공원으로 옮겨진 11공수여단 전두환 기념석.
하지만 이 기념석을 5·18 옛 묘역의 비석처럼 땅에 묻을 것인가를 두고 찬반으로 의견이 나뉜다. 전두환 기념석을 훼손할 경우 광주시가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5·18 상징물을 추가로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 때문이다. 11공수여단 부대 안에는 5·18 진압군 충혼탑이 있고, 3·7공수여단, 20사단, 31사단 등에도 전두환 기념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전남 장성 상무대 무각사에 있는 전두환 범종도 반환받으려고 조계종 쪽과 대화를 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후식 5·18부상자회장은 “기념석을 땅에 묻기보다, 전두환 범종을 비롯해 5~6개의 전씨 관련 비석 등을 이전한 뒤 한데 모아 역사의 교훈을 줄 수 있는 교육적 목적으로 보존·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18을 왜곡·폄훼하는 전씨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또한 역사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5·18항쟁 당시 시민군 기동타격대원이었던 양기남씨는 “80년 5월27일 계엄군에 체포된 사람들이 끌려온 옛 상무대 영창 터는 매우 중요한 5·18 사적지다. 전씨에 대한 경멸과 응징의 의미로 비석을 땅에 묻어 밟고 지나가는 것이 역사적 교육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5·18 유공자도 “광주 진압을 잘했다고 세워둔 전두환 비석을 보존하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라고 되물었다.
글·사진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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