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도 고향으로 오고 싶어 했어요”
일제 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만주의 청산리와 봉오동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뒀던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 장군이 76년째 낯선 타국 땅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다.
경기도의 초청으로 11일 파주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 참석차 한국에 온 김알라(77)씨는 “할머니 등 집안 어른들로부터 외할아버지의 소원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한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다. 홍 장군은 김씨가 태어난 다음 해 숨졌다.
“외할아버지가 한 살 때 저를 품에 안고 계실 만큼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그런 외할아버지에게 기어가서 입으로 손가락을 물곤 했다고 합니다”
카자흐스탄으로 옮긴 홍 장군은 학교에서 경비로 일하는 등 노년을 힘들게 보내다 숨진 뒤 크질오르다의 한 묘지에 묻혔다. 연해주로 보내진 김씨는 그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결혼했다.
김씨는 “레닌이 외할아버지를 불러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말했는데 외할아버지가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이것으로 만족한다. 총만 달라. 나라를 해방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셨다고 집안 어른들한테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홍 장군의 외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찾는 한국인들도 많이 늘었고 그들은 김씨에게 화장품과 사탕, 달력을 선물로 놓고 갔다. 홍 장군이 한국 정부의 서훈을 받거나 후손들이 지원을 받은 적도 없지만, 그는 서운하지 않다고 했다. 현재 연금으로 생활하는 김씨는 “후손이라고 꼭 보상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없다. 뭘 탐내지 않았던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니까 나도 외할아버지 방식대로 별로 바라는 것 없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도 아쉬움과 인생의 마지막 바람이 있다. ‘장군의 귀향’이다.
10여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김씨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러시아에서 흙을 가져와 임진각 근처의 바다에 뿌렸다. 해방된 고향에 오시고 싶으셔도 못 오시는 외할아버지의 꿈을 이루어주는 마음으로 했다. 외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슬펐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을 기억하는 김씨의 어머니 형제들도 세상에 없다. 조카 등 후손이 있지만, 외할아버지의 기억은 없다. 외할아버지의 귀향에 대한 꿈은 온전히 그의 몫이 됐다.
한국에 올 때마다 받는 환대에 고마워한다는 김씨는 미안하다고 했다. 김씨는 “내게 마지막 꿈이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를 한국에 모시는 것은 내게 달린 것이 아니다. 내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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