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인제 등 강원도 곳곳에서 난 산불로 주택 478채가 불에 탔다. 사진은 고성군 토성면에서 소방대원들이 민가로 옮겨붙은 불을 끄는 모습.
윤유성(68)씨는 퇴직하고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부어 2012년 강원도 강릉시 옥계에 집을 지었다. 마당을 포함해 120㎡ 규모의 집에 들어간 돈은 1억2000만원이다. 하지만 지난 4일 발생한 강릉·동해 산불로 그는 하루아침에 삶터를 잃었다. 지금은 친척 집과 마을회관 등 임시거처를 전전하고 있다.
윤씨는 “아직 행정 기관에선 어떤 식으로 지원해주겠다는 말이 없지만, 언론을 통해서 1300만원이 지원된다는 얘길 들었다”며 “그 돈으론 철거 비용도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윤씨는 또한 “대통령이 특별재난지역까지 선포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게 어떻게 특별 보상이냐. 대출해준다고 해도 갚을 능력이 없으니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지난 6일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등 5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피해 주민들은 생활 안정을 위한 ‘구호비·복구비’와 ‘세금 감면’ 등 크게 2개 분야로 나뉘어 지원받게 된다. 하지만 불에 탄 주택 복구 지원금이 1300만원에 그쳐 실질적인 대책이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강원도 재난안전실의 산불 피해 현황을 보면, 주택과 상가 등 시설물 피해는 모두 1722곳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불에 탄 주택은 478채다. 임시주거시설이나 친척 집 등을 떠돌고 있는 이재민만 916명에 이른다. 이들에겐 새 보금자리가 절실하다. 하지만 국비로 지원되는 ‘주택 복구비’는 턱없이 적다. 완전히 불에 탄 집은 가구당 최대 1300만원이 지원된다. 50% 이하로 피해를 본 가구엔 지원금 650만원이 전부다. 최대 6천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피해 주민 상당수가 고령에다 경제 능력도 떨어져 대출을 받더라도 대체로 상환이 쉽지 않다. 속초·고성·양양이 지역구인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재민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복구 지원비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이번 산불은 사실상 자연재해에 가깝다. 이재민 주택 복구 지원 추정사업비 405억원 중 70%인 283억원을 정부에 국비지원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건축 허가 등을 받은 주택은 그나마 일부라도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피해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들도 있다. 양봉농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산불로 큰 피해를 봤지만, 피해 보상이 어려울 전망이다. 고성에서 양봉업을 하는 이영자(53)씨는 “애써 키운 벌이 산불로 모두 죽었다. 예전처럼 생태계가 회복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피해를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농촌 지역 특성상 농업 등에 필요한 창고 등을 조립식으로 무허가 건물을 지은 농업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성군청 관계자는 “아직 피해를 접수하고 현장 조사를 하는 단계다. 가건물 등에 대한 명확한 피해 보상 지침이 내려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속초/글·사진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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