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회에서 추진 중인 일본 전범기업 상품에 표시할 인식표 안. 경기도의회 제공
일제 강점기 조선인을 강제징용하고도 반세기 넘도록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전범 기업 제품에 ‘전범 인식표’를 붙이거나 수의계약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 제정이 추진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한·일간에 불필요한 외교 마찰을 일으킨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황대호 의원 등 도의원 27명이 발의한 ‘경기도교육청 일본 전범 기업 제품 표시에 관한 조례안’을 이달 중순 입법예고하고 19일까지 의견을 수렴했다고 20일 밝혔다. 조례안은 경기도 내 학교에서 사용하는 빔프로젝터, 카메라, 복사기 등 물품 중 일본 전범 기업의 제품에 대해 인식표를 부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례가 정의하는 전범 기업은 2012년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도시바, 미쓰비시, 히타치, 가와사키, 스미토모 등 일제강점기에 수탈과 징용 등에 나선기업 299개로 이 가운데 284곳이 현존하고 있다.
조례를 발의한 의원들은 “일부 일본 기업이 대일항쟁기 당시 전쟁 물자 제공 등을 위해 우리 국민을 강제로 동원해 노동력을 착취했지만, 그동안 공식 사과나 배상은 커녕 역사를 부정하고 있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시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도의회는 오는 26일 임시회 상임위에서 해당 조례의 상정 여부를 논의한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이 조례안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은 이날 조례 제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도의회에 제출했다. 도교육청은 “한·일 외교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중앙정부가 먼저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조례안이 필요하다면 일반 시민들에서 전범 기업에 대한 구매 반대 등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일본 전범 기업과 관련한 조례는 서울시에서도 마련됐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성룡 서울시의원은 지난 1월 동료 의원 30명과 함께 ‘서울시(서울시교육청) 일본 전범 기업과의 수의계약 체결 제한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다. 이 조례안은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해 이들의 산하기관이 일본의 전범 기업의 물품을 사지 않도록 수의계약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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