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경기도교육청 최순영 시민감사관
최순영(66)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이 29일 출범한 ‘경기도 민관협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경기도 민관협치위는 주민이 직접 각종 주요 정책·예산 수립·집행과정에 행정·의회와 대등하게 참여하는 ‘도민협치’ 기구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위원장이고, 부위원장은 이화영 평화부지사와 공동이다. 최 부위원장이 운영위원장을 겸해 사실상 민관협치위를 이끈다.
강원도 강릉에서 19살 때 돈 벌러 상경했던 최 부원장은 와이에치(YH) 노조 대표로 해고와 구속, 그리고 지역 여성노동운동에 이어 풀뿌리 민주정치와 진보정치, 민관협치까지 40여년을 달려왔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함께 사는 삶이었다”는 그를 경기도 민관협치위가 출범한 29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만났다.
‘경기도 민관협치위’ 공동 부위원장에
운영위원장도 겸해 사실상 주도 예정
“의회·행정 함께 주민 참여 통로로” 유신몰락 이끈 ‘와이에치’ 노조지부장
풀뿌리·진보정치 나서 ‘생활입법’ 성과
“주민 목소리 담아 제도개선 이뤄낼 것”
“행정의 독주시대를 끝내고 이제는 주인인 시민과 함께 가야죠.” 민관협치의 의미를 묻자 최 부위원장은 “촛불혁명 때 우리가 많이 이야기했지만 권력이 어디서 나오나요? 국민입니다. 주인인 국민이 관과 더불어 정책을 제안하고 견제도 하고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 것도 감시하는 일을 하자는 거죠”라고 말했다.
협치기구의 탄생은 지난 지방선거의 영향이 크다. 20년간 이어온 경기도의 보수 지방정권이 진보정권으로 바뀌면서 첫 민관협치의 물꼬도 트였다.
최 부위원장은 “지방선거 때 시민단체의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협치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어요. 주민 직접 참여 민주주의의 확대를 약속한 이 지사가 당선됐고 인수위 시민참여위원회 위원장을 제안받으면서 본격 논의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후 6개월간 꾸준히 시민사회단체와의 토론, 서울시의 민관협치위원회 사례 등을 검토해 이날 마침내 ‘경기도 민관협치위원회’라는 옥동자를 낳았다. 협치기구에는 도청의 주요 실·국장,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전문가 등 모두 28명이 참여한다. 운영과 제도개선, 의제 형성, 역량 강화 분과에서 경기도민과의 소통을 이어간다.
지난 40년 그의 이력에는 ‘1호 푯말’이 유독 많다. 세월의 무게 만큼 삶 또한 치열했다. ‘최순영’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79년 이른바 ‘와이에치(YH) 사건’이었다. 그해 8월9일 회사쪽이 일방 폐업하자 186명의 와이에치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며 야당인 신민당사를 점거했다. 그는 당시 와이에치무역의 노조 지부장이었다. 깜짝 놀란 박정희 정권이 1천명이 넘는 경찰력을 동원해 진압에 나서면서 여성 노동자 100여명이 다치고 노조 대의원 김경숙씨가 숨졌다. 무자비한 탄압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졌고 철옹성 같던 유신정권 몰락의 도화선이 됐다.
“1970년 초 상경해서 첫 직장이 가발공장 와이에치무역이였어요. 공장에서 모범생이었고 기술도 좋아서 나중에 하청공장을 운영하면 돈도 벌 수 있겠다고 했는데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을 보면서 이렇게 좋은 법이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란 사실을 알게 됐죠.”
노조 결성에 뛰어들어 지부장으로 선출됐지만 해고된 그는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여성 노조지도자 교육에서 당시 신인령 간사(전 이화여대 총장) 등에게 배우면서 사회에 눈을 떴다. “돈이 전부가 아니구나.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때 교육을 마치면 자신의 비문을 쓰게 했는데 노동자와 함께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임신 6개월 때 결행한 ‘와이에치 사건’으로 당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구속됐다 풀려난 그는 그뒤 여성 노동자운동과 지역 풀뿌리 생활정치, 진보정치에 몸을 던졌다. 1983년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꾸린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는 노동자 교육과 상담을 위한 국내 첫 기구였다. 1986년 서울 구로동에서 시작해 89년 부천으로 옮긴 ‘튼튼이 아가방’은 국내 첫 비영리 탁아소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부천시에 정착한 그는 주민들과 국내 최초 의정 감시단체인 의정지기단를 만들고 1991년에는 시민후보로 부천시 의원에 당선됐다. 주부들과 함께 벌인 ‘담배자판기 금지 조례’와 학부모에게 급식시설비를 물리려던 정부의 방침을 철회시킨 ‘학교급식운동’은 풀뿌리 생활정치의 한 획을 그었다. 담배자판기 설치 금지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도 이어졌다. 2004년 민주노동당에 영입돼 진보정치에 나선 그는 장애인 학생의 의무교육을 중등에서 고교까지 확대하는 법안도 관철시켰다.
최 부위원장은 “지역 주민과 장애인 학부모처럼 이 땅의 주인인 평범한 시민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였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으로 사립유치원의 비리 감사는 물론 문제점을 찾아내 이른바 ‘박용진 3법’이라는 제도 개선까지 마련했다.
그는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제기한 문제는 제도개선까지 이뤄낼 수 있도록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웃과 뜨겁게 살아온 그가 민관협치로 만들어갈 세상이 궁금하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29일 경기도 민관협치위원회 부위원장 겸 운영위원장으로 위촉받은 최순영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
운영위원장도 겸해 사실상 주도 예정
“의회·행정 함께 주민 참여 통로로” 유신몰락 이끈 ‘와이에치’ 노조지부장
풀뿌리·진보정치 나서 ‘생활입법’ 성과
“주민 목소리 담아 제도개선 이뤄낼 것”
29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도 민관협치위원회’ 출범식에서 위원장인 이재명(앞줄 왼쪽 둘째) 지사와 최순영(앞줄 가운데) 부위원장 등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사진 경기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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