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안터마을 반딧불이의 군무. 안터마을 주민과 자연환경 국민신탁 등은 지난해 말 반딧불이 핵심 서식지를 사들여 반딧불이 터전을 보존했다. 옥천군 제공
충북 옥천군 동이면 안터마을은 그 이름처럼 ‘편안한 땅’이다. 오봉산을 등지고 대청호를 앞에 둔 마을은 늘 고즈넉하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순한 땅에 흘러들어와 마을을 이뤄, 마을 한쪽엔 고인돌 등 선사시대 유적도 있다. 줄잡아 5천년 이상 마을이 이어졌다는 증거다.
마을의 자랑은 반딧불이다. 5월 무렵이면 어김없이 반딧불이가 마을의 밤하늘을 수놓는다. 한국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는 크게 운문산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3종류다. 이곳 반딧불이는 운문산반딧불이다. “여기서는 한 걸음 뗄 때마다 한 마리 정도의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어요. 운문산반딧불이 개체 밀집도가 가장 높을 걸요.” 이 마을 주민 박효서(55)씨의 말이다.
마을은 2009년부터 해마다 반딧불이 축제를 연다. 주민들이 ‘개발’보다 ‘공존’을 택한 결과다. 이 마을은 옥천 읍내나 경부고속도로 옥천 나들목에서 차로 각각 5분 남짓한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자칫 개발 논리에 밀려 터전을 내줄 수도 있었지만 주민들은 ‘더 촌스럽게’를 내세워 반딧불이와 공존한다. 농사를 지을 때 주민들은 농약을 쓰지 않는다. 호미·가래로 김을 맨다. 논두렁·밭두렁의 웃자라는 풀도 일일이 손으로 깎는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 반딧불이뿐만 아니라 마을 실개천엔 가재·민물고기가 지천이에요. 수확량은 적어도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은 참 맛있어요.” 유관수(52) 이장의 자랑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주민들의 안간힘에 ‘자연환경 국민신탁’이 마을 지킴이로 나섰다. 자연환경 국민신탁은 국민 모금·기부·증여를 통해 보전 가치가 있는 자연 환경자산과 문화유산을 취득하고 보전·관리한다. 국민신탁은 옥천 안터마을과 함께 독도·울릉도 해안선, 비무장지대, 제주 곶자왈 등 7곳의 보전에 힘쓰고 있다.
안터마을 주민과 자연환경 국민신탁 등은 지난해 말 반딧불이 핵심 서식지를 사들여 반딧불이 터전을 보존했다. 자연환경 국민신탁 제공
국민신탁은 지난해 말 모금 등으로 모은 1800만원으로 안터마을 반딧불이 핵심 서식지인 논 608㎡, 밭 1234㎡ 등을 사들였다. 올해 2차 모금을 시작했다. 7천만~8천만원 정도를 더 모아 반딧불이 터전 3300㎡를 추가 매입할 계획이다. 엄삼용 국민신탁 협력팀장은 “환경지표종인 반딧불이가 산다는 것은 사람도 살기 좋다는 것이다. 반딧불이와 사람이 공존하는 친환경 터전을 조금씩 늘려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 반딧불이는 마을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반딧불이 축제 전인 2008년에는 마을 주민은 50가구 130명 정도였으나, 지금은 80여 가구 200여명으로 늘었다. 반딧불이 축제, 선사 문화제, 김장 체험 등 행사 때마다 도시민들이 넘쳐난다. 유관수 이장은 “다른 농촌은 대개 사람이 줄지만, 우리 마을은 다르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젊은이도 속속 마을로 몰려든다. 반딧불이가 가져온 기적”이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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