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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 30년만에 ‘마을기업 전문가’로 귀향합니다”

등록 2018-12-27 19:41수정 2018-12-27 20:20

[짬] 전남 순천시 낙안면장 신길호씨
새해 1월2일 순천시 낙안면 첫 공모 면장으로 ‘귀향’하는 신길호씨는 “네번째 인생 방향 전환도 성공하고 싶다”고 결의를 다졌다. 사진 포항노다지마을 제공
새해 1월2일 순천시 낙안면 첫 공모 면장으로 ‘귀향’하는 신길호씨는 “네번째 인생 방향 전환도 성공하고 싶다”고 결의를 다졌다. 사진 포항노다지마을 제공
외모만 보면 전형적인 무인이었다. 키 180㎝, 몸무게 80㎏,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해병대 소령 출신. 하지만 그가 살아온 여정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두 달 전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자리입니다. 하지만 앞으론 늘 낙안면을 이름대로 ‘즐겁고 편안한 마을’로 만드는 꿈을 꾸겠습니다.”

최근 공모에서 전남 순천시의 낙안면장으로 뽑힌 신길호(51)씨는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세차례 180도 방향을 바꾼 이력과 경력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다들 주목하는 거 같다. 유리 진열장 안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관심을 마을 사업을 풀어나가는 동력으로 삼아 네번째 인생 전환도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낙안읍성’ 마을 첫 공모 면장 뽑혀
고흥 출신 순천고 나와 ‘해사’ 진학
해병대 소령 전역…포스코계열사 근무

2013년 귀촌 ‘포항노다지마을’ 설립
‘가공·유통·체험’ 성공사례로 명성
“이름처럼 ‘즐겁고 편안한 낙안’으로”

전남 고흥 출신으로 순천고를 나온 신씨는 1992년 해사를 졸업하고 해병대 소위로 임관해 서울, 포항, 김포 등지에서 11년 동안 복무했다. 소령으로 전역한 그는 2004년부터 7년 동안 포스코 계열회사인 스카이산전과 비엠에스(BMS)에서 영업차장부터 기획이사까지 여러 직위를 거쳤다. 신사업 기획, 인력 충원, 투자 유치, 해외 영업 등을 두루 경험하며 시장을 몸으로 익혔다. 콩고공화국, 중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의 산림 조성과 자원 개발 현장도 누볐다.

그는 2013년 경북 포항시 남구 금광리로 귀농하며 인생의 방향을 180도 틀었다. 이듬해 농업법인 포항노다지마을을 설립한 뒤 66만㎡에서 쌈채소를 경작하고 청국장을 만드는 등 가공·유통·체험을 결합시켰다. 4년 만에 직원 28명에 매출 10억원, 흑자 2억원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둔 그는 마을기업 전문가로 변신했다.

그는 새해 1월2일 순천시 낙안면사무소로 부임한다.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으로 읍·면·동장을 맡는 드문 사례다. 임기는 2년이다. 면사무소 인근에 빈집을 임대해 살기로 했다. 공무원 겸직 금지 규정에 따라 운영해온 농업법인은 가족에게 맡겼다.

그는 지난 10월 첫번째 면장 공모 때는 알지 못했다. 1차 신청자 7명 중 적격자가 없어 무산됐다. 11월 재공모 때 순천의 지인들과 동창들이 응모를 권했다. 귀농 7년의 과정을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고 있던 이들이 ‘당신이 딱이야’라고 전화를 해왔다. “그저 웃으며 흘려들었죠. 그때까지 단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마을이었으니까요.”

그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은 전영하 경북도 사회적경제 과장의 강력한 권유였다. 경북마을기업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전 과장과 만난 자리에서 ‘낙안 면장 공모’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타향인 경북에서도 기획력·열정·추진력으로 마을기업을 성공시켰는데 고향에 가서 면장 직위와 고교 동문 등을 아우르면 농촌을 살리는 데 10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개방형 공모의 취지가 바로 그런 데 있다고 한술 더 떴다. 그 역시 돌아보니 귀농한 뒤 6년째 혼자 고민해도 안 풀리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막상 공모 신청서를 내려 하자 노다지마을에서 난리가 났다.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서 그가 떠나면 누가 맡느냐고 우려했다. 직원 28명 중 13명이 39살 미만 청년인 만큼 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미완의 상태에서 후배들이 회사를 만들어가야 책임감도 자부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분야별로 2~3명 책임제 운영과 6개월 수익통로 개척을 제안하며 겨우 설득했다.

신길호(앞줄 가운데 흰옷) 대표는 친환경쌀로 만든 ‘in 치즈 쌀떡볶이’ 브랜드를 개발하는 등 포항노다지마을 농업법인을 4년만에 안착시켰다. 사진 포항노다지마을 제공
신길호(앞줄 가운데 흰옷) 대표는 친환경쌀로 만든 ‘in 치즈 쌀떡볶이’ 브랜드를 개발하는 등 포항노다지마을 농업법인을 4년만에 안착시켰다. 사진 포항노다지마을 제공
2차 면장 공모 경쟁자는 7명이었다. 전형위원 면접을 치르고, 면민 100명 앞에서 복무계획을 발표했다. 면민들은 ‘지역과 행정을 전혀 모르는데 자격이 있나’, ‘해병대식으로 복무하면 어떡하냐’고 뾰족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다채로운 경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 기업활동을 하면서 몸에 밴 포용력 등을 내세웠다. 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낙안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지인 낙안읍성을 품고 있는 유명 관광지로, 주민 4천여명이 조선시대 200여 채의 초가집과 성곽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고 있다. 그는 면접을 마친 뒤에야 낙안면을 처음 둘러봤고, 주민심사를 받기 위해 두 번째 방문했다. 이제 세 번째는 면장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벌써부터 마을기업 10개 육성과 귀농귀촌학교 운영, 배·오이 등 특산품 활성화 등 직무구상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그는 특산품인 배와 오이 판매에 주력할 참이다. “친환경으로 고추와 사과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다. 사과는 배, 고추는 오이와 농사법과 유통과정이 비슷하다. 모양이 나빠 제값을 받고 팔지 못하는 비품을 피클이나 장아찌 같은 식품으로 만드는 가공공장을 짓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런 마을기업을 10개 정도 만들어 5년 이상 지속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면사무소 안에 귀농귀촌학교를 운영한다는 그림도 그렸다. 기업체와 협력해 귀농귀촌학교를 열면 수강생이 1차로 관광객이 되고, 2차로 귀촌인과 귀농인이 될 수도 있다. 마을을 돌아보니 농사 짓지 않고 방치된 비닐하우스가 많았다. 이를 활용해 귀농인한테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고, 어르신한테 이를 생활비로 돌려드리는 사업도 세우고 있다.

그는 “사실 새 출발보다 뒷정리가 더 어렵다. 노다지마을 주민들은 포항 호미곶에서 열리는 해맞이축제 때 1만명의 식사를 제공한다. 매출 1억원을 올리는 중요한 일이다. 새해 1월 1일 해맞이를 잘 마치고, 2일부터는 낙안에 온통 몰입하겠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포항노다지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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