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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안전관리 주체도 불명확…정부 “경보기 의무화” 뒷북

등록 2018-12-20 04:59수정 2018-12-20 09:08

숙박업과 달리 ‘소화기·화재감지기’만 설치 의무화
농촌관광 활성화 규제 완화로 ‘소방안전 사각지대’
농식품부, 뒤늦게 시설기준 및 등록절차 강화 나서
경찰 과학수사관들이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저동 현장감식을 위해 ㅇ펜션 201호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강릉/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경찰 과학수사관들이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저동 현장감식을 위해 ㅇ펜션 201호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강릉/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소화기와 화재감지기 정도만 설치하고 신고하면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는 농어촌 민박 제도가 18일 강원도 강릉 펜션 고교생 참사의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어촌 민박은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일산화탄소(CO) 경보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며 안전점검의 주체도 불명확하다. 정부는 뒤늦게 농어촌 민박에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민박의 안전점검을 강화하는 관련 대책을 내놨다.

19일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사고가 난 펜션은 지난 7월24일 강릉시에 농어촌정비법이 규정한 농어촌민박업으로 신고·등록됐다. 농어촌 민박은 농식품부가 농어촌 관광을 활성화하고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해 1995년부터 시행한 제도다.

문제는 농어촌 민박이 비슷한 숙박시설인 호텔, 모텔, 여관 등과 달리 신고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주택 연면적이 230㎡를 넘지 않고, 최소한의 소방시설만 갖추면 신고·등록하는 데 별다른 제한이 없다. 사고가 난 펜션도 이 기준에 맞게 면적이 228㎡다. 호텔, 모텔, 여관 등 일반숙박시설과 관광호텔, 콘도 등 관광숙박시설은 특정소방대상물로 지정돼 소화설비, 경보설비, 피난설비 등을 설치해야 하고 소방시설 유지관리 의무까지 져야 한다. 하지만 사고가 난 펜션과 같은 농어촌 민박은 특정소방대상물에서 제외돼 소화기와 불이 났을 때 연기를 감지하는 단독경보형 감지기만 갖추면 된다.

농어촌 민박은 건축법상 주택으로 분류되고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운영돼 신고, 수리, 사후관리 업무는 지방정부에서 맡는다. 이 펜션은 지난 7월에 문을 열었기 때문에 한달 앞선 6월 해마다 전국 지방정부가 실시하는 하절기 정기점검을 받지 않았다. 강릉시는 펜션이 문을 열 당시 현지조사를 벌였으나 소방 관련만 점검했을 뿐이다. 가스 안전 점검은 지방정부가 아니라 가스 공급자의 몫이다. 김한근 강릉시장은 이날 사고 관련 브리핑에서 “농어촌 민박은 숙박업과 관련한 것만 점검한다. 보일러 부분은 점검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19일 오전 강원도 강릉 ㅇ펜션에서 고등학생 10명이 사상한 사고를 조사하는 경찰이 두번째 현장감식을 준비하고 있다. 강릉/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9일 오전 강원도 강릉 ㅇ펜션에서 고등학생 10명이 사상한 사고를 조사하는 경찰이 두번째 현장감식을 준비하고 있다. 강릉/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농어촌민박업은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시설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용재 경민대 교수(소방안전관리과)는 “이번 사고에서 드러난 것처럼 가스나 유류 등을 사용해 개별난방을 하고 불을 피워 고기 등을 구워 먹는 펜션 등 시설에는 캠핑장과 마찬가지로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중앙난방을 하고 취사를 하지 않는 호텔이나 모텔과는 달리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야영장의 경우, 2015년 3월 강화도 글램핑장 화재 사고를 계기로 같은 해 8월 ‘등록제’가 도입된 뒤 안전·위생 기준이 꾸준히 강화돼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월 야영장에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관광진흥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고, 법제처의 심사를 거쳐 내년 1월 시행한다.

농어촌민박업의 안전 의무 기준을 강화하는 동시에 안전점검 관리 주체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재 교수는 “최소한의 규제만 적용받는 농어촌 민박은 소방의 사각지대에 있는 시설”이라며 “안전점검 주체가 지방정부나 소방, 가스 공급자, 펜션 소유주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안전점검 주체가 명확하지 않으면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학생들을 잃고서야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식품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전국 농어촌 민박을 포함한 모든 농촌관광시설에 대해 매달 1회 가스 누출 점검과 환기 상태, 보일러 배기관 이음매 연결 상태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어촌 민박 등록 때 10일의 신고 수리 처리 기간을 둬 적정 시설기준 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 등 소방 관련 시설을 강화하기 위해 농어촌정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전국 지방정부에 긴급 펜션 안전 실태 점검을 지시했다.

이정하 선담은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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