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1일 오후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통일을 대비한 미래의 교육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과학으로 비약하여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
지난 10월4일부터 2박3일 동안 평양에서 열린 ‘10·4 정상선언 11주년 공동기념행사’를 다녀온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11년 만의 방북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귀다. 이 교육감은 평양 ‘과학기술전당’에 커다랗게 쓰인 이 글귀를 보고 “체제의 선전과 옹호 일색이었던 북한이 이처럼 바뀐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가 가진 유일한 주식은 <한겨레> 밖에 없다”며 반갑게 기자를 맞이한 이 교육감을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1시 경기도 수원의 도교육감 집무실에서 만났다. 소박하고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기는 이 교육감은 이날 오랜만에 북한에 다녀온 탓인지 다소 흥분된 어조가 역력했다.
정부 각료가 아닌 경기도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본 북한의 모습에 대해 이 교육감은 “학생들을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과학기술전당과 평양학생소년궁전 등을 둘러보면서 달라진 북한이 미래 청소년들의 교육에 얼마나 열정을 쏟는지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방북을 계기로 정부와 기업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만나 다름과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경기도 교육은 민주시민교육과 평화와 통일의 교육도 병행해 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1년 만에 북한을 다녀온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변화한 북한의 모습을 설명하며 평화통일에 대비한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다음은 이 교육감과의 일문일답이다.
-교육자로서의 방북은 처음인데, 북한 교육 관계자와 만남이 있었나?
▶아쉽지만 별도의 자리는 없었다. 사전에 실무회담 때 논의가 안 되면 분야별 미팅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7년 장관급 회담 때 만났던 통일전선부 출신 전종수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위원장을 만났다. 그래서 미래 세대들에게 평화 통일의 꿈을 실어주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자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남쪽에서 너무 많은 요청이 들어오긴 하지만, 교육협력사업을 강화해 나가자”는 답을 받았다.
-방북 이후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 지향점도 변화가 있을 듯한데?
▶통일과 민족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만남’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르기만 하면 안 되지만, 남북을 오가는 수학여행도 좋고 오케스트라 합주도 좋다. 또 북쪽 학생들이 남쪽 노래를 배워보고, 우리 학생들이 북쪽 노래를 따라 해보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부터 교환하면 좋겠다. 학생체육 분야도 교류가 활발해지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우리 경기도는 접경지역이 6곳에 이르는데, 시·군 중심으로 체험학습을 강화해서 남북을 모두 이해 할 수 있는 분야에 문호를 열었으면 좋겠다.
-방북 결과를 우리 교육자들과 공유해 청소년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면 어떤가?
▶물론이다. 방북 이후 갖게 된 소신과 교육감의 역할을 위해 조만간 전국의 교육감들과 논의해 교육계의 방북을 추진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다른 교육자들이 단순히 청취하는 것보다는 많은 우리 교육자들이 북한 직접 보고 체험해 변화의 물결을 함께 느껴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역사적 현장은 물론 교육현장도 함께 둘러 볼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구상을 해볼 계획이다.
-북한도 교육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는 말씀인데, 그럼 우리 교육의 미래 과제는 무엇이라 보는가?
▶교육의 목표는 민주시민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통일시민,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 눈을 뜰 수 있도록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인공지능,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한 교실 혁명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상상력과 필요를 담은 학교 공간을 만들어, 교실을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꿈의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주도 교육과정을 넘어 학생주도의 교육과정으로의 혁신도 필요한 시기다.
따라서 지역별로 학교와 마을, 지자체가 협력하는 교육생태계를 강화해 지역별 특색이 반영되는 교육자치와 학교자치를 구현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선 통일, 산업혁명, 인공지능 등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미래교육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교사 재교육에 대한 논의와 실천도 필요하다.
-그럼 변화된 환경에 따른 학생과 교사의 자세나 역할도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요?
▶당연하다. 학교와 교실이 기능적·전문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학교는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닌 학생 스스로 문제 의식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또래들과 협력하는 곳으로 변화해야 한다. 교실수업도 지식전달에서 협력, 토의·토론, 체험, 프로젝트 학습 등 학생 주도의 다양한 융합적 교육방법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교사는 지식전달자가 아닌 조력자로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꿈과 진로를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여기에 친구는 학습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의 관계로 재정립도 필요하다. 이는 곧 학교폭력 갈등 해결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은 민주·세계시민, 평화시대를 여는 통일시민 교육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했는데 취지는?
▶시민교육은 교과목의 지식보다 미래의 시민이 될 학생들이 미리 경험하고 배워야 할 중요한 가치이자 내용이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은 여러 교과목에 흩어져 있는 민주시민교육에 필요한 다양한 주제인 인권·노동·평등·선거·다양성·연대, 정의뿐만 아니라, 통일·세계빈곤·기아·환경·에너지·인종차별 등의 내용을 다뤄 체계적인 시민교육을 하려 한 것이다. 이는 교육과정 내 선택교과로 개설하여 활용하거나, 동아리시간, 자율활동시간 등 창의적 체험활동과 연계한 토론, 논술활동 및 이해교육 등의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또 사회, 도덕, 국어 등 다양한 교과와 연계하여 수업시간에 활용하고 있다.
이재정 교육감이 인터뷰 도중 지난 10월 방북 당시 북한에서 가져온 과자상자를 들어보이며 변화한 북한의 경제사정과 일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 교육감은 인터뷰 마무리에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이제 아이들의 손을 과감히 손을 놓아달라”고 당부했다.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줘야만 변화하는 세계 속에 진정한 학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한겨레> 독자는 ‘한겨레’를 지향하는 분들이 많으니, 교육은 물론, 통일문제도 아이들이 아이들의 맑은 눈으로 남북을 이해하고 통일이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사진/경기도교육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