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13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서 열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반대 집회에 나온 이민수씨(아래)와 주민 배미영(40)씨. 이민수씨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그저 승용차를 막았을 뿐인데….”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탄 승용차의 진로를 막았다가 2년 넘게 수사와 재판을 받는 청년이 있다. 경북 성주군에 사는 이민수(39)씨다. 2016년 7월13일 국방부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를 성주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해 7월15일 황교안 당시 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은 성주 주민들을 설득하려고 성주군청에 왔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분노한 주민들에 쫓겨 전아무개 경사의 개인 승용차를 타고 성주의 공군 방공기지인 성산포대쪽으로 몸을 피했다.
이날 오후 6시10분께 이씨는 성산포대로 이어지는 폭 6m 도로를 따라 순찰차와 승용차가 올라오는 것을 봤다. 이씨는 “승용차에 누군가 타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순찰차가 지나가자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차를 막았다. 황 전 총리가 탄 차였다. 이씨는 “당시 순찰차에서 내린 경찰관들이 달려와 ‘승용차 문을 열라’며 발길질을 했다”고 말했다. 경찰관은 긴급탈출 장비를 가져왔고, 이씨가 탄 차의 운전석 유리를 부쉈다. 황 전 총리가 탄 차는 이씨가 세워둔 차의 뒤쪽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의 차와 황 총리가 탄 차가 충돌했다. 황 전 총리가 탄 차는 그 길로 성산포대로 향했다. 당시 이씨의 차 안에는 아내(39)와 딸(11), 쌍둥이 아들(8) 둘이 타고 있었다.
경찰은 “이씨가 도로를 막고 있다가 갑자기 승용차를 후진해 뒤쪽 빈틈으로 빠져나가려는 승용차를 들이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씨는 “후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황 전 총리가 탄 차가 들이받고 그대로 가버렸다”고 맞섰다. 충돌 당시 영상이 담긴 블랙박스 등 직접적인 물증은 없었다. 경찰은 이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해 지난해 1월9일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이씨 집과 차량을 압수수색해 이씨와 아내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가져갔다. 이씨는 경찰 조사 다섯 차례, 검찰 조사를 한 차례 받았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지난해 12월18일 이씨를 기소했고, 첫 형사재판은 지난 8월21일 열렸다. 수사와 재판을 받다가 2년 3개월이 지나간 것이다. 3심까지 간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이씨는 “2년 넘게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너무 힘들고 불안했다. 하지만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던 중 회사를 그만 두고 지금은 참외농사를 짓는다. 2년 넘게 이씨를 변호한 류제모 변호사는 “시비를 떠나 황 전 총리 등 책임 있는 분들이 나서서 중재했으면 쉽게 끝날 문제였다. 주민 한 명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2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북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어린 아이가 3명이나 타고 있는 차량의 창문을 (경찰이) 깬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상운 경북지방경찰청장은 “제가 보고 받기에는 (현장 경찰들이) 아이가 타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고 답변했다.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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