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 다큐멘터리 작가 조천현씨가 압록강변에서 촬영을 하는 모습이다. 조천현씨 제공
한국전쟁의 상흔 노근리에 평화가 깃든다. 이번엔 사진이다. 지금부터 20년 전이다. 1999년 9월 30일 ‘노근리’는 전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마사 멘도사, 최상훈 기자 등 <에이피>(AP) 보도팀이 한국전쟁 초기인 50년 7월 25~29일 사이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쌍굴다리 주변에서 민간인을 폭격해 수백명이 숨졌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노근리 학살 사건’이 비로서 세상에 공개됐고, 진상규명 활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쌍굴다리 학살 현장 건너편 13만2240㎡엔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됐다. 2011년 정부가 191억원을 들여 만든 공원에는 평화기념관·추모비 등이 들어섰고, 평화 체험·교육·전시 등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 이곳에선 새로운 평화, 통일을 위한 사진 전시가 한창이다. 오는 12일까지 이어지는 <압록강 건너 사람들>이다. 지난 20년동안 북한·중국 접경지대에서 북한 주민들의 일상과 풍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온 조천현(53·사진) 작가의 사진 61점이 선보이고 있다.
한국전쟁 상흔 ‘노근리 보도’ 20년째
노근리평화공원에서 12일까지 사진전
북·중 접경지 ‘압록강 건너 사람들’
1997년부터 20여년 수백차례 기록
지난 여름에도 압록강·두만강 답사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도 공개하고파”
올 여름에도 북-중 접경지 촬영을 다녀온 조천현 작가는 남북 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 기류 덕분인지 북한 주민들의 표정과 호응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조천현씨 제공
지난해 6월 의정부시 경기도북부청사에서 같은 제목의 전시를 열어 <한겨레>에 소개됐던 그의 사진이 다시금 눈길을 끄는 이유는 1년새 완전히 달라진 한반도 평화 기류 덕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는 지난 7~8월 여름 압록강변 모습도 볼 수 있다.
조 작가는 1997년 영상으로 먼저 압록강·두만강 등 북한 언저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는 2008년부터 찍어왔다. 1년에 20차례 안팎 이곳을 찾았으니 어림잡아 400여 차례는 다닌 셈이다. 중국 공안(경찰)에 붙잡혀 입국 금지 조처를 받기도 했으며, 북한 병사의 총구에 노출되기도 했고, 주민들의 돌을 맞기도 했다.
“이제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요. 북한 주민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싶었고, 또 그들의 생활을 여럿에게 보여주고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남과 북이 서로 소통한다고 믿었죠.”
이번 사진전을 기획한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의 정구도 이사장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상징인 노근리에서 평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화의 강을 따라 통일의 길로 향하는 한반도의 꿈을 조 작가의 사진을 통해 투영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월간 <말> 기자로 탈북 문제를 취재한 이후, 독립 프로듀서로 <현지르포 두만강 변 사람들>, <5년 기록 압록강 이천리 사람들> 등을 연출하는 등 접경지대 북한 주민들의 삶을 기록해왔다. 최근 10년 동안은 압록강 상류 양강도 혜산시에서 하류 평안북도 신의주까지 92만5502㎞에 걸쳐 있는 마을 107곳의 다양한 생활과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압록강은 주로 공포·죽음·탈북의 강으로 묘사되지만 그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강이다.
그의 사진에는 물놀이하는 아이, 빨래하는 아낙, 뗏목 타는 어른, 밭 가는 농부 등 평화로운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사진전을 찾은 이들은 북한의 모습이라는 것에 놀라고, 우리와 다르지 않은 풍경에 또 놀란다.
“좁게는 강폭이 1m 남짓하니 손을 내밀면 잡을 수도 있죠. 물리적 거리보다 가까운 것은 사람입니다. 시대와 공간을 떠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꼭 같아요. 70년간 남북이 헤어져 살고 있지만 본모습은 달라지지 않아요.”
그의 사진에선 지난 10년 사이 변화를 거듭한 북한 주민의 모습이 고스란히 감지된다. 강변에서 물놀이하던 아이들의 옷은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변했고, 자동차 타이어 속 검은색 튜브 일색이던 물놀이 기구도 형형색색으로 바뀌었다. 슬레이트·너와 형태의 지붕은 기와를 넘어 아파트로 진화했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젠 카메라를 들이대면 포즈를 취하기도 할 정도로 북쪽 주민들도 많이 열려 있어요.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표정에서 잘 읽힙니다. 이제 서로 자유롭게 만나는 일만 남았어요.”
그의 꿈도 물론 당당히 북한에 들어가 셔트를 누르고, 또 전시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방북도 5~6차례 해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담기도 했지만 아직 전시는 못했어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체제 보호를 위해 고립된 북한의 모습만 강조했지만 헛된 짓이었어요. 이젠 서로 보여줘야 마음이 열려요.”
그는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란 제목의 사진·영상전과 두만강 주변 사람들의 사진전도 기획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