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20일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회원들이 인천 남구 인천지검 정문 앞에서 끈에 묶인 굴비를 든 채 “검찰은 안상수 인천시장을 구속수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왼쪽). 1992년 14대 대선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기춘씨가 1993년 4월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부산 기관장 모임 사건’(초원복국집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첫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자료사진
민주화 뒤 오히려 기초지방정부까지 확산
권력기관장에 기업, 언론사 대표까지 가입
권력기관장에 기업, 언론사 대표까지 가입
지방 기관장 모임의 역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주도해 지역마다 권력기관장들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연 것이 출발이었다.
지방 기관장 모임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불명확하다. 대체로 박 전 대통령이 두번째 출마한 1967년 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66년쯤으로 추정된다. 당시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 선거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공안기관’들인 중앙정보부,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경찰, 검찰의 지역 책임자들과 도지사, 시장 등이 모여 논의하던 자리였다.
이런 행태가 낱낱이 드러난 건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일어난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이었다. 김기춘 당시 법무장관은 부산의 권력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당선되면) 영도다리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된다”는 등의 선거 개입, 지역감정 조장을 사실상 지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지방 기관장 모임은 초원복국집 사건 이후 들어선 김영삼 정부 때부터 힘을 잃기 시작했다. 다수 지역에선 ‘일수회’ ‘기우회’ ‘인화회’ 등으로 이름을 바꿨고, 일부 지역에선 사라지기도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는 ‘대구경북지역발전협의회’ ‘부산발전동우회’ 등 새로운 기관장 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다만, 모임의 중심은 과거 중앙정보부나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옮겨갔다. 또 군사정권이 끝남에 따라 보안사(기무사)가 빠지고, 기업이나 언론 매체, 대학의 대표들이 추가됐다.
그래서 현재 운영되는 광역정부 기관장 모임은 출범 시기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경기의 ‘기우회’나 강원의 ‘위봉회’처럼 박정희 정부 시절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반면 ‘대구경북지역발전협의회’나 ‘충청권행정협의회’ 등은 김영삼 정부 이후에 만들어졌다.
김영삼 정부 이후 이런 기관장 모임은 광역지방정부에서 기초지방정부까지 확산됐다. 대구의 경우 중구회(중구), 대덕회(남구), 수성구진흥회(수성구) 등 구별 기관장 모임이 운영된다. 이런 모임은 보통 기초단체장 중심으로 지방의회 의장, 경찰서장, 소방서장 등이 회원이다. 일부 지역에선 기무사(군사안보지원사) 간부가 참석하기도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통상 기관장 모임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는데, 지방자치단체장과 경쟁자이거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초대받지 못하기도 한다.
김일우 이정하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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