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보고서 <기억전쟁> 펴낸 박만순. 오윤주 기자
18일 오전 묵직한 가방을 멘 반바지 차림의 한 사내가 기자실 문을 열었다. 박만순(52)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기억전쟁-‘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영동 고자리서 단양 느티마을까지’>>(기획출판 예당)란 책을 들고 왔다.
“책 냈어. 충북 민간인 학살 보고서라고 해야 하나?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벌써 16년이 흘렀네. 하하 세월 참 빨라….”
그는 2002년 6월 18일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간담회’를 시작으로 민간인 학살의 기억을 좇아왔다. 5840일 동안 충북지역 마을 2000여곳을 들러 6000여명을 만나 60여년 간직해온 전쟁 같은 학살의 기억을 끄집어냈고, 낱낱이 기록했다.
책엔 바위로 가슴을 누르는 듯 무거운 기억들이 기록돼 있지만 소설처럼 책장이 넘어간다. “누구나 공유해야 할 우리 역사이기에 이야기 들려주듯 쉽게 쓰려 했죠.”
첫 장은 1950년 7월 9일 국민보도연맹원으로 숨진 이웅찬씨의 기록이다. 당시 네 살배기였던 이능원씨의 희미한 기억과 친지·이웃 등으로부터 전해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청주경찰서 무덕전으로 수백명의 보도연맹원이 모였는데 경찰이 아버지를 살려 주려고 담배 심부름을 두 차례나 시켰는데 고지식한 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숨졌다네요….” 아버지가 숨진 뒤 가세가 기울었고, 평생 ‘빨갱이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 살아야 했다.
1950년 7월 11일 오창 양곡창고 학살 사건은 처절하다. 군인들은 창고 안에 가둔 보도연맹원들에게 총격을 가한 뒤, ‘대한민국 만세라고 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다시 총을 쐈다. 확인 사살을 한 것이다. 7월 10~11일 사이 280여명이 숨졌고, 92명은 가까스로 살아났다. 강순임씨는 “아버지가 양곡창고에서 숨졌지만 시신이 엉키고 부패해 수습조차 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월북한 벽초 홍명희 선생과 같은 마을에 살았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이들도 있다. 허윤배씨는 “괴산 제월리 사람 12명이 학살됐는데 이 마을 출신 벽초가 월북했다는 게 이유였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의열단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 뒤 좌익으로 몰려 학살당한 홍가륵 선생의 이야기와 청주 형무소 사건, 단양 곡계굴 학살, 제2의 노근리 학살로 불리는 영동 매천리 학살 등을 발굴하기도 했다. 학살 위기의 주민을 구해낸 영동 용화지서장 이섭진, 영동 용산 양조장 주인 김노헌, 청원 강서지서장 남정식 등 ‘충북의 쉰들러’라 할 수 있는 의인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책 <기억전쟁>은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현황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그동안 각종 보고서에선 어림짐작으로 추산됐던 학살자 숫자가 이번에 국민보도연맹원 4386명, 부역혐의자 207명, 형무소 재소자 800명, 미군에 의한 학살 1348명, 북한군과 지방 좌익에 의한 학살 549명 등 7320명 학살을 조사, 기록했다. 또 학살 장소, 규모, 일시 등을 규명했으며, 사건별 피해자 명부도 작성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인정한 충북지역 학살 규모는 900여명에 불과하다. 실제 유족·주민 증언 등을 종합하면 적어도 7300여명 이상이 학살됐다. 반드시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해 억울하게 숨진 이들의 원혼을 달래야 한다. 이 책이 작은 거름이 됐으면 한다.” 박만순 대표의 바람이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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