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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울지 말아요 광주여!

등록 2018-05-16 15:39수정 2018-05-17 08:40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장

몰랐다. 5월이면 환청에, 환각에,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이리저리 악몽에 시달리던 해맑은 광주의 소녀들이 있었음을. 쉬쉬 풍문으로 나돌던 말들은 상상 이상이었다. 80년 5월 광주항쟁의 복판에서 스물셋 여대생의 꿈이 산산 조각났다. 고문과 성폭행. 몰랐다. 시민군 근거지 전남도청에서 안내방송을 했던 김선옥이 언론을 통한 용기 있는 미투가 있기 전까진. 그날 이후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도 자신의 삶을 사수하기 위해 그가 하루를 얼마나 견뎌야 했던가를.

보상? 5·18 민주유공자 보상신청서에 그는 이렇게 적었단다. “내 인생을 보상한다고요? 얼마를 주실 건데요? 무엇으로, 어떻게 내 인생을 보상하려고요? 뭘?”(<한겨레> 5월8일치)

38년 걸렸다. ‘왜 이제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언제, 우리는 국가는 그들의 숨은 눈물, 숨죽인 고통에 귀 기울여 왔는가. 누군가 오월의 분홍에 취해 있을 때, 사랑과 평화란 우산 아래 행복해할 때, 쪼개진 어린 삶에 눈을 줘 봤는가. 그도 모자라 얼마나 은폐하고, 왜곡하고, 망각을 강요당해왔던가. 해서, 많이도 닮은 아픔을 건너온 제주4·3도 마음으로 포갠다. 그리도 지척인 거리, 광주의 그날에.

광주민주화운동의 여성 성폭행 문제는 이미 5·18기념재단의 증언채록 등 증언은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 사회에 드러낼 수 없었던 시대가 덮어버렸다. 오래 그래왔다. 이 대목은 당사자들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견뎌내야 할, 말할 수 없던 기억들이었다.

38년 전 저 너머의 시간은 더 그랬다. 편견에 찬 여성성에 대한 이데올로기도 한몫했다. 거대한 미투의 물결 앞에 한 여자가 저홀로 감내하던 지옥같던 마음의 감옥을 나섰다. 이것은 역사가 됐다. 다시 숨은 목소리들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없다. 나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피해자는 나왔으나 가해자는 없다. 절대 내가 잘못했다고 나서지 않는 것을 보라. 가해자는 기억이 잘못됐다고 부인하거나, 기억이 자연사하기를 바랄까. 언제든 누구든 죽을 거니까. 무덤까지만 가자고 하는 걸까. 그런데, 타는 5월이 죽지 않는 이상, 타오르는 4월이 죽지 않는 이상,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사람은 사라져도 5월은 다시 떠오른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당대 기록의 역사는 살아있고, 당대의 증언은 다시 살아서 반드시 책임져야 할 자들을 불러낼 것이기에.

급기야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5·18진상규명특별법 범위에 성폭력 사건을 명시하도록 하는 특별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기대한다.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일임을 알 것이다. 5·18과 4·3. 끝나지 않는 기억을 갖고 사는 여성들에 대한 접근은 참으로 힘겹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가족과 개개인의 상황들이 다르다. 상처를 들춰내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해서 한걸음 한걸음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문제에 무슨 공소시효가 적용되는가. 이 땅의 양민학살에 진실규명에 대한 시간에 데드라인이 왜 필요한가. 총상을 당하지 않았다고 희생자가 아닌가. 그것이 당사자들을 다시 침묵, 분노하게 하고, 아프게 한다.

5월17일. 광주는 오늘부터 눈물이다. 눈물이 어찌 마르겠는가. 해마다 오월이면 계엄군들, 자신을 쫓아오는 검은 그림자를 생각해보라. 심각한 트라우마로 삶의 전부를 뒤틀리게 했던, 인간이 인간에게 해선 안 될 국가폭력이자 인권유린이었다. 이제라도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던 그들의 시간으로 달려가야 한다.

70살 먹은 제주4·3 역시 진행형이다. 아직도 입을 닫은 대목이 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젊은 광주는 어찌 마를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렇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이다. 그 정의의 시간이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한 야만의 세월, 기억과의 사투를 벌여온 그들, 제주할머니들이 숯가슴이 된 광주에 늙은 위로를 보낸다. “이젠 울지 마라 광주야, 살다보면 살 수 있다’, 울지 말아요 광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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