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때 계엄군에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한때 여승이 됐던 여고생의 큰오빠 ㅇ(오른쪽)씨가 13일 낮 이지현 전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장과 어머니의 묘소를 참배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대하 기자
“동생은 아직도 5월이 다가오면 2~3년마다 한바탕 앓아요. 올해도 곧 병원에 입원한다고 그러요.”
5·18 때 계엄군에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여고생의 큰오빠 ㅇ(75)씨를 13일 낮 전남 나주, 그의 어머니 묘지에서 만났다. 성폭행당한 뒤 여승이 됐다가 환속한 동생 ㅇ씨는 5월이 되면 아직도 피해 후유증이 나타난다.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거나 온 집안을 들쑤시고 가족을 때리기도 한다. 여동생은 지난 12일 방송된 에스비에스 인터뷰에선 “그런 일이 없었다”고 피해 사실을 전면 부인하기도 했다. 오빠 ㅇ씨는 5·18 이후 가족들이 짊어진 짐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딸 걱정 하시다가 가셨제.” 오빠는 어머니 묘지에 술 한 잔을 올린 뒤 눈시울을 붉혔다. 꽃다운 고등학교 1학년이던 동생은 5·18 뒤 변해버렸다. 갱생원과 병원을 수시로 오갔고, 가족들이 굿도 해보고 교회도 보내봤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때때로 여동생의 분노는 가족들을 향했다. “(여동생이) 나만 무서워라고 해. 어머니는 피해부러요. 자식하고 싸움하겄어요?” 결국 절로 들어가 여승이 된 여동생은 우여곡절 끝에 1991년 6년 만에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어머니는 4년 전께 88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막내딸을 걱정했다.
5·18 때 계엄군에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한때 여승이 됐던 여고생의 큰오빠 ㅇ(왼쪽)씨가 13일 낮 전남의 한 식당에서 이지현 전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장과 1989년 2월 여승이었던 여동생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대하 기자
오빠 역시 5·18 때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지인 2명과 함께 1980년 5월21일께 광주에서 온 시민군 차를 타고 광주의 자동차 공장까지 가는 등 항쟁에 참여했지만 보상 신청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5·18이 그들 가족에겐 너무 큰 짐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빠는 “과거엔 정신병원에 두달 입원하면 나가라고 했다. 그래서 동생을 행려병자들 수용하는 곳에 보내기도 했다”며 미안해했다. 여동생은 1995년 5·18 검찰 수사 때 검찰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이후 여동생은 말문을 닫았다. 방송에서 찾아와서 인터뷰하자고 해도 “아무 소용 없다”며 모두 거절했다.
이날 묘지엔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지현(예명 이세상·65)씨가 동행했다. 이씨는 1988년 2월 이들 남매를 만나 여동생의 피해 사실(<한겨레> 5월9일치 1면)을 직접 들었던 사람이다. 이날 이 전 회장이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해야 한다”고 설득하자, 오빠는 “가족들이 겪은 고통만이라도 진술하겠다. 노모의 마지막 한이 풀리길 바란다”며 기회가 되면 증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5·18 때 계엄군에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여승이 됐던 여고생이 1989년 2월20일 이지현 전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장과 만나 당시 아픈 사연을 털어놓고 있다. 이지현씨 제공
이와 관련해 피해자 ㅇ씨처럼 5·18 뒤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정부의 체계적인 조사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조사 결과, 정신질환 등 5·18 후유증으로 자살한 사람이 42명(2014년)이며, 현재도 120명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5·18로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은 보훈병원에 신고하면 입원 치료가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5·18 때 자행된 성폭력 피해자들 상당수는 피해 사실마저 감춰져 정신 치료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찾는 여성 대부분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이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조사한 5·18 생존자 자살자 통계
오수성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국립으로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되면 국립정신병원과 연계해 이들의 치유와 재활을 체계적으로 돕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향후 국립광주트라우마센터와 5·18 인권병원을 설립하는 것도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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