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송건호 선생이 유년 시절을 보낸 생가터. 건물은 금방 무너질 듯 폐허가 됐고, 마당은 잡초가 점령해 을씨년스럽다. 이곳은 다음 달 잔디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오윤주 기자
6일 오후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 청암 송건호(1926~2001) 선생 생가를 찾았다.
‘올곧은 기자 정신으로 일관된 선생의 삶은 후배 언론인들의 사표가 되고 있다.’
마을 어귀에 선 안내판을 따라 좁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니 ‘참 언론인 송건호 선생 생가터’ 표지석이 선명하다. 뒤 편 쓰러질 듯한 건물엔 ‘비야대정로 1, 2길 37-1, 37-2’란 주소판이 박혀 있다.
비에 씻겨 반지르르한 장독, 생뚱맞은 기념식수를 빼면 모두 허름하다. 마당은 아예 잡초가 점령해 사실상 폐허다. 흙벽은 무너질 듯 군데군데 구멍이 났고, 슬레이트 지붕은 울퉁불퉁하지만 기둥은 곧고 바르게 서 있다.
청암 송건호 선생 생가터 표지석. 송건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지난해 12월 세웠다. 오윤주 기자
이곳은 이제 다음 달이면 잔디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옥천군이 예산 8000만원을 들여 건물을 철거하고 말끔하게 정비할 참이다. 터 1021㎡는 선생의 아들 준용씨가 기부했고, 건물 76.03㎡은 옥천군이 사들였다.
송건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힘을 낸 덕이다. 사업회엔 이인석(66) <옥천신문> 초대 대표 등 옥천 지역 언론인과 김영만 군수 등 뜻있는 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올해 송건호 알리기 사업의 하나로 <만화 송건호>를 펴낼 참이다.
사업회는 언론문화제 부활도 추진한다.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언론문화제 사업을 공모했다. 옥천 주민 33명은 2000년 8월 15일 정지용 시인 동상 앞에서 <조선일보> 바로 보기 옥천 시민모임을 꾸리고 ‘안티 조선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했으며,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해마다 언론문화제를 열었다. 이안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언론문화제 부활과 함께 옥천 언론 성지화 사업, 청암 선생 기념사업을 본 궤도에 올리는 게 올해 목표”라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비야대정로(증약리) 어귀에 선 청암 송건호 선생 생가 안내판. 오윤주 기자
생가 터에 흉상, 기념관 등을 세우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인석 사업회 대표는 “옥천의 청암기념사업회, 서울의 청암언론문화재단, 송 선생이 몸담았던 <한겨레> 등이 공동으로 흉상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중장기적으로 청암선생 기념관 등을 세워 옥천을 언론의 성지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만 옥천군수도 “선생은 옥천을 넘어 시대를 아우르는 지성이요, 참 언론인의 상징이다. 이념, 세대, 진영과 상관없이 지역 대표 인물로 세우는 데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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