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상완군의 가족들이 14일 오전 정북 정읍 황토현 이팝나무 언덕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안형준 군을 기리는 99번 나무 옆에서 세월호 4주기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들고 있다. 백혈병 투병중에도 노란리본을 만드는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던 김 군은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정읍/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상완이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살아 있을 때 ‘먼저 떠난 형·누나들을 만나 배가 왜 침몰했는지 진상 규명하라고 앞장서 외쳤던 일을 말해주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잘못한 사람들이 희생자들 앞에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지난 14일 오전 11시께 전북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 수련원 행사장. 지난 2월10일 백혈병으로 숨진 김상완(14·중2)군의 아버지 김철(49)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정읍시민이 함께 가꾸는 ‘피어라, 이팝생명꽃 304그루’ 행사가 열렸다. 애초 이팝나무 304그루가 심긴 근처 동산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비가 와서 장소를 옮겼다.
여기 이팝나무들은 2년 전인 2016년 4월9일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심겼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은 시민들이 2014년 7월 ‘정읍세월호시민모임’을 꾸려 일을 진행했다. 304그루는 세월호 희생자 수를 뜻한다. 이팝나무를 심은 이유는 봄이면 흰쌀밥 같은 꽃을 수북이 피워 ‘생명나무’라고도 불리기 때문이다. 꽃말도 ‘영원한 사랑’이다.
세월호 행사에 참여한 뒤 상완이 가족의 모습. 아버지 김철(뒷줄 오른쪽 끝에서 시계방향으로)씨, 어머니 이진순씨, 동생 상윤, 상완, 형 상헌군, 그리고 상헌군 친구들이다. 고 김상완 가족 제공
이팝나무 동산의 304그루 중에는 상완이 가족이 심은 나무가 있다. 희생된 단원고 안형준군을 기려 심었다. 이팝나무와 함께 ‘상완이 소나무’도 지난 2월 심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 정읍시내 촛불광장에 설치했던 소나무 화분을 기증자의 도움으로 이곳에 옮겨 심고 ‘상완이 소나무’로 이름붙였다.
동병상련이었을까. 세상을 떠난 상완이는 노란 리본을 만들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펼침막을 내거는 등 세월호와 관련한 일에 적극적이었다. 백혈병이 재발한 시기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이다. 상완이는 형 상헌(고1)과 동생 상윤(중1)에게 세월호 행사 참여를 자주 권했다. 어머니 이진순(43)씨는 “어떤 사람들이 ‘세월호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하자, 지겹다고 이야기하면 가슴이 아파요. 저는 그나마 보는 앞에서 상완이를 보냈지만, 자식이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했다.
상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10년 6월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그 뒤 인터넷으로 공부해 중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친 것으로 인정받았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 친구가 없었고 많이 외로웠다. 그래서 더 많이 단원고 형·누나들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2014년 4월에 재발한 병은 점점 심각해졌고 상완이는 결국 지난 2월 세월호 희생 학생들처럼 부모 마음속의 별이 됐다.
아버지 김씨는 상완이를 잃고 20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상완이가 자꾸 생각나 휴대전화에 있는 상완이 사진도 지웠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김씨는 세월호시민모임 활동에 적극적이다. 시민모임이 지난 3년 동안(2015년 1월~2017년 12월) 펼친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서명 운동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철가이버’로 불릴 만큼 손재주가 좋은 그는 행사장의 무대 설치도 하고, 노란 리본 걸기 틀도 만들었다. 김씨는 “아픈 중에도 상완이는 희생된 세월호 형·누나들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이제 형·누나들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렇게 기대하면서 상완이는 떠났다”고 말했다.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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