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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면 지는 거니께’…공주고 “할머니들의 아픔, 함께 기억해요”

등록 2018-04-08 13:41수정 2018-04-08 22:05

공주고 학생, 위안부 피해자 아픔 보듬는 광고 제작
벼룩시장 배지 팔아 모금…100번 시내버스에 부착
위안부 피해 할머니 시내버스 광고 제작·부착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주고 이영창·이시원·박혁진·이용성·김태원군.(왼쪽부터)공주고 제공
위안부 피해 할머니 시내버스 광고 제작·부착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주고 이영창·이시원·박혁진·이용성·김태원군.(왼쪽부터)공주고 제공
“잊으면 지는 거니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담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할머니가 세상을 향해 뱉은 절규다. 충남 공주에선 짧고 묵직한 이 화두가 시내버스에 담겨 시민의 마음을 울린다. 최근 충남 공주 도심을 오가는 100번 시내버스 차체엔 “잊으면 지는 거니께” 문구와 평화의 소녀상, 학생 4명의 모습이 담긴 광고가 붙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함께 기억해요. 우리!’ 란 글도 곁들였다.

공주고 학생들이 성금 모금을 해 공주 100번 시내버스에 제작·부착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관련 광고.공주고 제공
공주고 학생들이 성금 모금을 해 공주 100번 시내버스에 제작·부착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관련 광고.공주고 제공
광고는 공주고 학생들이 제작해 붙였다. 지난해 1학년 2학기 자율활동의 하나인 ‘빛깔 있는 학급별 창의 주제 활동’에서 누군가 던진 “일제, 위안부, 독도 문제 등 역사 인식에 대해 고민 좀 해볼까”가 출발점이다. 학생들은 머리를 맞댄 끝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뜻있는 일을 하는 데 의기투합했다. “논의 끝에 위안부 할머니 관련 광고를 제작해 시내버스에 붙이기로 했죠. 학생은 물론 시민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공유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공주고 학생들이 지난해 11월 학교 도서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광고 제작과 배지 구입을 위한 벼룩시장을 열고 있다.공주고 제공
공주고 학생들이 지난해 11월 학교 도서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광고 제작과 배지 구입을 위한 벼룩시장을 열고 있다.공주고 제공
답을 냈지만 참여와 비용이 문제였다. 교내 벼룩시장을 열고, 위안부 배지를 팔아 성금을 모으기로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학생과 교직원 등은 책·옷·학용품·가전제품·만년필 등 쓰지 않는 물건을 너도나도 기부했다. 순식간에 200여점이 모였다. 학생들은 지난해 11월 8~14일 도서관 앞에서 벼룩시장을 열었다. 인기가 치솟은 물품은 경매도 했다. 한 교사가 내놓은 무선 마이크는 4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벼룩시장, 경매 등의 인기로 애초 예상의 배가 넘는 60여만원이 남았다.

공주고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 배지 판매를 위해 제작한 홍보물.공주고 제공
공주고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 배지 판매를 위해 제작한 홍보물.공주고 제공
학생들은 이 돈으로 위안부 배지 400개를 샀다. 벼룩시장에 낼 물품을 기부한 학생·교사 등에게 200개를 선물했다. 100개는 교내에서, 나머지 100개는 이웃 공주사대부고에 원정을 가서 팔았다. 2학년 이시원(17)군은 “원래 1500원이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나누려는 뜻에서 500~1000원을 받고 팔았다. 배지가 순식간에 동날 정도로 인기여서 놀랐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시내버스 광고 제작·부착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주고 이영창·이시원·박혁진·이용성군.(왼쪽부터)공주고 제공
위안부 피해 할머니 시내버스 광고 제작·부착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주고 이영창·이시원·박혁진·이용성군.(왼쪽부터)공주고 제공
배지를 사고, 팔았더니 38만원이 남았다. 광고 제작·부착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학생들은 시내버스 광고대행사로 가 사정을 설명하고 한 달 만이라도 광고를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이 업체 김강철(50) 대표는 “자식 또래 아이들의 뜻이 너무 기특해서 학생들의 도안을 바탕으로 광고를 제작해 버스에 붙였다. 한 달 계약을 했지만 이변이 없으면 올 한해는 그대로 붙여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시내버스 광고 제작·부착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주고 학생들. 공주고 제공
위안부 피해 할머니 시내버스 광고 제작·부착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주고 학생들. 공주고 제공
광고를 붙인 학교와 학생들에게 시민의 칭찬이 잇따르고 있다. 학생들은 이미 ‘위안부 할머니 광고 시즌2’를 기획하고 있다. 이 학교 백경자(48) 교사는 “광고 제작 프로젝트를 벌이면서 위안부 할머니와 일제에 대한 학생들의 역사 인식이 몰라보게 성숙해 갔다. 버스에 광고가 실린 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시민도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공유할 수 있게 돼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위안부 피해 할머니 시내버스 광고 제작·부착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주고 학생들. 공주고 제공
위안부 피해 할머니 시내버스 광고 제작·부착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주고 학생들. 공주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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