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가 초강 김지섭 선생에게 보낸 한문 편지. 벽초는 아버지 홍범식 선생의 장례에 도움을 준 김 선생에게 고마운 마음 등을 담은 편지 4통을 보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특별히 보살펴 주신 은혜를 입어 관을 싣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제 장례를 치러 아픔의 눈물이 새롭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나머지는 정신이 혼미해 더 쓸 수 없네요. 고애자 홍명희.”
벽초 홍명희(1888~1968) 선생이 쓴 한문 편지가 그의 고향 충북 괴산에 온다. 이 편지는 벽초가 22살이던 1910년 8월 경술국치 때 자결한 아버지 홍범식(1871~1910) 선생의 상을 치른 뒤 경북 안동에 있던 초강 김지섭(1884~1928) 선생에게 보낸 것이다. 충남 금산군수이던 홍범식 선생은 자결 직전 금산재판소 통역·서기로 있던 김 선생에게 유서 등이 담긴 상자를 건넸고, 김 선생은 홍범식 선생이 숨진 뒤 이 유서 등을 벽초에게 전달했다.
이후 벽초는 김 선생을 ‘형’이라 부르며 4통의 편지를 썼다. 둘째 편지에선 “길에서 곡하고 헤어진 뒤 아직도 꿈만 같다. 형 건강하세요”란 내용을 담았고, 셋째·넷째 편지에선 “상주인 저는 모진 목숨을 보전해 근근이 살아갈 따름이다. 어려움을 겪은 뒤 스스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등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전했다. 이들 편지는 지난 2월 풍산 김씨 가문이 기증한 서한 등을 분석하던 한국국학진흥원이 찾았다. 김지석 선생은 의열단원으로 일본 황궁에 폭탄을 던진 뒤 투옥돼 일본 지바구치소에서 순국했다. 김순석 국학진흥원 문학박사는 “편지는 독립운동 집안 간 끈끈한 유대와 벽초가 소설 <임꺽정>을 쓴 배경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괴산군은 벽초의 한문 편지 4통을 복제한 뒤 벽초 생가 주변인 괴산읍 제월리에 조성하고 있는 수산테마파크에 전시할 참이다. 김영태 괴산군 수산팀장은 “편지에는 애국심, 벽초의 문학혼 등이 담겨 있다. 벽초 문학제 등 뜻있는 행사 때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하고 있는 원본도 대여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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