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8일 열 예정이던 사죄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한준섭 충남도 공보관이 대기하던 취재진에게 취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 전 지사의 기자회견은 갑작스레 발표됐고 돌연 취소됐다. 애초 기자회견은 8일 오후 3시 충남도청 1층 로비서 기자회견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낮 12시 57분께 신형철 전 충남지사 비서실장이 기자들에게 취소한다는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공보관이 문자 내용을 취재진에게 읽어주는 상황이 벌어졌다. 도청에 온 100여명의 취재진은 혼란과 항의가 이어졌다. 안희정 전 지사의 갑작스러운 기자회견 발표부터 돌연 취소까지를 되짚어 봤다.
■ 8일 오전 9:00…안희정 기자회견 앞둔 충남도청
이날 아침부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인 충남도청 1층 로비에 오전부터 방송사 카메라 받침이 자리 잡았다. 안 전 지사 쪽은 30초 안팎의 짧은 입장문만 내놓은 뒤 취재진 질문을 받지 않고 청사를 빠져나가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분노한 시민과 안 전 지사 일행의 충돌을 우려해 5개 중대 경력을 배치하는 경비 계획을 세웠다. 기자회견에 앞서 충남도 인권위원회 등은 성명을 내어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비판하고 철저한 처벌 및 피해자를 보호하는 보호조처 마련을 촉구했다.
■ 8일 낮 12:50…돌연 기자회견 취소, 그 배경은
안 전 지사 쪽 신형철 전 충남지사 비서실장은 이날 낮 12시50분께 기자단 등에 문자를 보내 “안희정 전 지사의 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문자 전문(안희정 전 지사 입장발표 취소 안내).
검찰에 출석하기 전에 국민 여러분, 충남도민 여러분 앞에서 머리 숙여 사죄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신속한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검찰에 출석하여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 앞에 속죄드리는 우선적 의무라는 판단에 따라 기자회견을 취소하기로 하였습니다. 거듭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저를 소환해주십시오.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기자회견 취소에 대해 남궁영 충남지사 권한대행은 “7일 밤 추가 성폭행 보도로 여론이 크게 악화한 게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자회견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관측은 7일 밤 나왔다. 안 전 지사가 김지은 비서 외에 자신이 만든 싱크탱크인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도 1년여 동안 지속적으로 여러 차례 성추행과 성폭행을 했다는 보도에 여론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신형철 전 충남지사 비서실장은 기자회견을 두 시간여 앞둔 8일 낮 12시50분께 취재진에게 문자를 보내 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알렸다. 이로써 안 전 지사는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할 기회도, 도민에게 고개 숙일 기회도 모두 잃게 됐다.
■ “검찰, 빨리 소환해달라” 이유는?
안희정 전 지사가 문자로 보낸 입장발표문에서 “검찰 출석에 앞서 국민과 도민께 사죄하려고 했지만 모든 분들이 신속한 검찰 수사를 원하고 있어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는 것이 우선적 의무라고 판단했다”고 기자회견을 취소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어 “거듭 사죄드린다. 그리고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저를 소환해 달라.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끝을 맺었다.
안 전 지사가 이런 문자를 보낸 배경은 무엇일까? 안 전 지사 쪽은 성폭행 논란과 관련해 법정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에서 하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리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어 의도적으로 기자회견을 취소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 전날, 7일 저녁 6:00…갑작스러운 기자회견 예고, 그 까닭은
애초 안 전 지사 쪽은 사과 기자회견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지사 쪽 신형철 전 지사 비서실장은 6일 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사 등 우리가) 도청에 갈 일은 없을 거다. 취재진에 기다리지 말라고 전해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안 전 지사 쪽은 7일 오전까지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안 전 지사가 직접 나서는 것에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안 전 지사 쪽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7일 오후다. 남궁영 권한대행이 “검찰 출두하면서 사과하는 것보다 그동안 지지해준 도민과 국민께 앞서 사죄하는 것이 마지막 예의다. 그래야 충남 도정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궁 지사 권한대행은 5일 밤 김지은씨 성폭행 보도로 안 전 지사가 6일 사퇴하자 안 전 지사 쪽 윤원철 전 정무부지사와 상황을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남궁 권한대행은 “안 전 지사가 어떤 식으로든 나서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뿐 아니라 충남도청에서도 확산하고 있다”고 전하고 안 전 지사의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충남지역여성단체 회원들이 8일 충남도청 브리핑룸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을 규탄하는 펼침막을 펴 보이고 있다.
■ ‘기자회견 취소’ 안팎 반응은
충남도공무원노동조합은 “안희정의 비겁함과 비열함은 충남도정의 시계를 수십 년 후퇴시켰다. 정의와 민주주의란 말도 오염시켰다. 대한민국과 도민과 도청 직원은 당신에게 배신당했다”며 “기자회견 취소는 국민을 우롱한 처사다.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해 엄하게 처벌하라”고 밝혔다.
한편 안 전 지사는 지난 5일 김지은씨의 성폭행 폭로 보도가 나가자 다음날인 6일 새벽 12시50분께 페이스북에 피해자에 대한 사과, 정치활동 중단, 지사직 사퇴를 밝힌 데 이어 이날 오전 지인을 통해 충남도의회에 사퇴서를 제출한 뒤 잠적했다.
홍성/글·사진 송인걸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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