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용산고 쪽으로 넘어가는 후암동 좁은 골목과 계단에는 일제 강점기에 만든 적산가옥, 6·25전쟁 뒤 들어선 피난민 판잣집, 미군기지를 바라보는 서양식 벽돌집이 빽빽하다. 서울 성북초등학교 뒤쪽에서 시인 조지훈이 살던 집을 잇는 너비 60㎝ 남짓한 선잠로 골목 양쪽엔 비어가는 집이 여럿이다. 재개발 구역이었다가 해제되면서 주인이 고칠 엄두를 내지 않아 간신히 비가림만 하고 있는 집도 있다. 시멘트로 발라놓은 길 위엔 굳기 전에 다녀간 고양이 발자국이 선명하다.

서울시가 골목길을 따라가며 동네를 고치는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을 시작한다. 어둡고 위험했던 골목길을 고치고 폐가를 카페나 식당, 마당 등으로 만드는 골목길 재생사업에서 후암동 두텁바위로40길 430m 골목과 성북동 선잠로2길 800m 길이 첫 시범지로 선정됐다. 시는 후암동에선 활터골 경로당을 중심으로 골목전망대, 마을텃밭 등을 만들 계획이다. 선잠동 골목길에선 허물어져 가는 높은 담장을 낮추고 막다른 골목에 있는 폐가를 동네 마당으로 바꾸며, 오랫동안 문을 닫은 가게를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동네 주민과 의논 중이다.

통상 골목길은 법적으로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너비 4m 미만 길을 말한다. 왜 서울엔 포르투갈의 오비두스나 모로코의 페스처럼 아름다운 골목길이 없을까? 건축과 도시기반 건설이 자동차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땅값이 올라도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에 사는 사람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지난해 12월 시가 도시계획·디자인 전문가로 골목길 조사팀을 만들어 조사해보니 가파른 산동네 골목길에 사는 주민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이들은 전깃줄을 높이고 쓰레기를 제때 가져가는 등 삶의 기반이라도 제대로 갖춰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골목 재생’이 단지 디자인이 아니라 기반 시설을 갖추는 일이어야 하는 이유다.

이번 기회에 차가 지나다니는 길에서만 건축이 가능하도록 한 ‘4m 법’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는 3월에 ‘골목길 재생 활성화 방안 마련 심포지엄’을 연다. 여기서는 너비 4m가 안 되는 골목길에 있는 집도 더 이상 도로를 넓히지 않고도 집을 새로 지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두고 전문가와 시민이 토론을 벌인다.

이번 골목길 재생 기본계획을 총괄한 류제홍 서울형 공공조경가는 “골목길에 사는 사람의 숨통을 틔울 수 있도록 ‘4m 법’을 없애자는 의견이 많다.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 당장 상위법을 고칠 수 없다면 서울시가 특별구역 지정 등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