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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 30년 경험 살려 ‘광주형 노사공생 일자리’ 찾겠다”

등록 2018-01-08 20:01수정 2018-01-09 02:06

【길을 찾아서】 노동운동가 출신 행정관료 박병규 특보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에 내정된 박병규 일자리정책특보.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에 내정된 박병규 일자리정책특보.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에 노동운동가 출신이 내정되면서 안팎의 논란이 분분하다. 광주시 4급 상당 개방형 공무원이었던 그가 1급 관리관이 되자 일각에선 “공무원 위계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며 경계도 한다. ‘행정고시 합격자나 고위 관료, 정치인 출신이 맡던 부시장 자리를 고교를 중퇴한 노동자 출신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현대판 신분론’까지 제기됐다. 급기야 윤장현 광주시장은 최근 ‘경제부시장 내정에 부쳐’라는 성명을 통해 그 배경을 밝혔다. 윤 시장은 “30여년간 노동현장에 몸담으면서 노조위원장을 세번이나 수행한 사람을 행정 안으로 들이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며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경제부시장 내정자는 2014년 10월 공모를 통해 사회통합추진단장(4급)을 맡아 지난해까지 ‘광주형 일자리’ 정책을 총괄해왔다.

논란의 당사자인 박병규(53) 전 광주시 일자리정책특보에게 7일 전화를 걸어 경제부시장 내정자로서의 복안을 들어봤다.

‘기아차 광주’ 노조위원장 세차례 연임
2014년 4급 상당 개방형 공무원 임용
최근 1급 광주시 경제부시장 내정 ‘파격’
일부 자격 논란에 윤 시장 이례적 성명

시·대기업·소상공인…‘제3법인’ 추진
“상반기 ‘개혁 골든타임’ 최대한 활용”

박병규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 내정자는 기아자동차 노조위원장을 세차례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박병규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 내정자는 기아자동차 노조위원장을 세차례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그는 ‘소년 노동자’ 출신의 노동운동가다. 그는 1981년 고교 1학년 때 교사의 폭력에 항의하다 학교를 그만뒀다. “교사 폭력에 대한 나름의 저항”이었다. 그리고 서울 구로공단의 기계용품 조립공장에 취업해 ‘타이밍’을 먹어가며 밤샘노동을 하기도 했다. 이듬해부터 노동야학에 다녔다. 87년 6월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 때 노조활동을 하다가 해고됐다. 그 뒤 아시아자동차훈련원 6개월 과정을 마치고 90년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 입사했다. 97년 7월 기아자동차가 부도가 났고, 이듬해 33살 때 첫 노조위원장이 됐다. “정리해고를 막고 반납한 임금을 다시 받아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노동운동가로서 두번째 ‘강단’을 보여준 것은 2001년 5월 캐리어 사내하청 비정규직 투쟁 때였다. 제조업 공장에서 처음으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주장했다.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장으로서 천막농성을 주도하던 그는 이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무리’에게 폭행을 당해 반신마비가 왔다. 노동계에서조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주장이 너무 앞서간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그 투쟁 덕분에 캐리어 공장 6개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00여명이 모두 정규직이 됐다. 박 내정자는 “2000년 초부터 새로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을 주창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삶은 해고, 수배, 구속 그리고 또다시 수배로 이어졌다. 이런 경험이 ‘광주형 일자리’라는 새로운 발상을 가능하게 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그는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계단식 위계’에 따라 형성되는 ‘구조’가 잘못됐다고 봤다. “힘이 있는 노조에선 임금인상 효과가 높지만 힘없는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률이 마이너스인 곳도 있었어요. 이들은 더 열악한 삶을 살 수밖에 없잖아요?” 박 내정자는 2001년 폴크스바겐이 노사합의를 통해 독일 볼프스부르크주에 설립한 독립법인 ‘아우토5000’ 모델을 일찌감치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4년 지방선거 전 윤 시장에게 “노사가 함께 살고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으로 광주형 일자리를 처음 제안했다. 노동자는 적정 임금을 받는 대신 주거·복지·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고, 기업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안정된 노사관계를 제공하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기업들이 국외 투자와 자동화를 선호하는 것은 지금의 노사관계로는 국내에 투자할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고 그는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를 그릇에 담으려면 광주 빛그린 산업단지(406만㎡)에 제3의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제3의 법인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 내정자는 “제3의 법인엔 대기업과 시뿐 아니라 지역 소상공인과 소기업, 시민들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계의 동의 없이는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박 내정자가 특유의 성실성과 겸손함으로 주변 노동계를 설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는 노조위원장 시절 공장 정문에 서서 새벽부터 출근하는 조합원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했을 정도로 매사 성실성을 인정받아왔다. 그는 ‘쉼 없이 책을 읽고 공부하며 스스로 이론을 만들고 토론을 통해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그는 2009년과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공장 안에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박 내정자는 오는 10일 첫 출근한다. 경제부시장은 전략산업 유치, 일자리 정책과 기획 수립에 참여하고, 의회·언론·사회단체와 소통하는 정무적 업무도 맡는다. 취임식은 따로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국장 등 시의 간부들을 직접 찾아가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박 내정자는 “시가 올 상반기에 굉장히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노동계와 사회단체 등 주변과 소통하면서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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