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8일 열린 모두의 학교 개관식. 서울시 제공
6일 저녁 7시 서울 금천구 독산동. 학생없는 학교에 늦도록 불이 꺼지질 않는다. 2년 전 한울중학교가 떠나고 비어 있던 건물 곳곳에서 ‘모두의 학교’ 수업 준비가 한창이다. 1979년대엔 구로공단 시위를 진압하는 기동대원들의 건물이었고 1980년대부터는 중학교로 쓰였던 이 건물은 학생수가 줄어든 한울중학교가 근처 학교와 합치면서 비어 있었다. 그러다 지난 10월28일 시민들의 공공평생학습센터로 문을 열었고, 내년 3월부터는 정규강좌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카페 하나 찾기 어려웠던 동네에서 주민들은 모두의 학교에 넓은 베란다를 갖춘 동네 밥집이 열리길 바랐다. 모두의 학교는 처음 전문가들이 만든 설계도를 주민들이 뒤집어서 모유수유실과 옥상 도서관 등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낸 곳이다. 일(一)자로 나있던 학교 복도는 에스(S)자로 굽어서 그 사이사이에서 복도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품었다.
3층 학교 복도엔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복도가 토론의 장인 셈이다. 서울시 제공
‘시민주도형 평생학습’을 목표로 하는 모두의 학교는 어떤 강좌를 열기 원하는지 공모를 받고 8개 주제의 학교를 선정해 개강할 때까지 교육 과정을 컨설팅한다. 창업가들 지원 프로그램처럼 모두의 학교가 작은 평생학교 강좌들을 육성하는 방식이다. 컨설팅 첫날인 이날은 ‘독거노인 지도 만들기 학교’, ‘목공학교’, ‘은빛까치학교’ 3곳이 컨설팅을 시작했다. 이들 작은 학교들은 컨설팅을 마치고 교육과정이 승인되면 내년부터 정식으로 이곳서 학교를 운영하게 된다.
‘독거 노인 지도만들기’는 학습 목표가 곧 수업이다. 평생교육을 전공하는 늦깎이 대학원생들이 모여 만드는 이 학교는 대학원생들과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자기 지역 독거노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 분석, 인터뷰해 노인 삶의 분포도를 그려나간다. 사회학과 지리학, 그리고 다른 계층·세대의 대화가 이 프로그램의 재료다. ‘목공학교’는 경력단절 여성이나 중장년층들을 기술자로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수유실은 엄마들이 운동하는 마루교실과 통하고, 요리교실은 회의실과 통해서 음식을 들고 회의실로 바로 갈 수 있다. 모두의 학교 곳곳엔 주민들의 소원대로 만들어진 작은 통로들이 여럿이다. 서울시 제공
‘모두가 학생이자 선생님이 되는 진짜 학교’를 내건 이 학교의 교사들은 나이도 하는 일도 다양하다. ‘은빛까치학교’는 금천구 지역 65~75세 할머니 5명이 가르치는 드로잉 수업이다. 은퇴한 공무원들은 폐가구를 고치는 ‘아하! 학교’도 연다.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은 ‘펀펀(FUNFUN) 상호문화학교’를, 19~24살 금천구 청년들은 ‘1924금청년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외에도 부모·자식이 함께 집수리를 배우는 ‘모두의 홈’, 재생을 주제로 한 ‘업사이클’ 등이 열릴 예정이다.
모두의 학교는 2006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한 ‘스쿨오브에브리싱’에서 힌트를 얻었다. 배우려는 사람과 가르치려는 사람을 웹으로 연결해주는 이 서비스에서 사람들은 때론 교사, 때론 학생이 되어 양봉부터 우주과학까지 수만가지 경험과 지식을 나눈다. 모두의 학교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연결하는 오프라인 플랫폼이다.
모두의 학교는 서울 금천구 독산동 한울중학교를 고쳐 평생교육센터로 만들었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제공
모두의 학교는 교장이 없는 학교다. 이 학교를 주관하는 서울시 김영철 평생교육진흥원장은 학교 운영위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김 원장은 “시설과 운영권을 서울시로부터 이관받아 간섭하지 않는 행정권을 발동했다”고 했다. 김혜영 정책·홍보팀장은 “문화센터에서 볼 수 없는 수업을 하는 것, 강의형 수업에서 벗어나는 것, 이 수업을 씨앗 삼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수업을 하는 것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교육은 늘 학교에서 끝났고 다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여기서 새로운 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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