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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으로서 노근리 사건을 회개하지 않는 것이 슬프다”

등록 2017-11-02 17:48수정 2017-11-02 18:10

허버트 넬슨 사무총장 등 미국 장로교단 노근리 쌍굴다리 학살현장 찾아
평화공원 방문, 위령탑 헌화, 학살현장 답사, 추모 예배 등 이어
미국 내에서 정부에 노근리 사건 인정과 희생자·유족 배상 촉구 활동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회자 등이 2일 노근리 쌍굴다리 현장을 찾아 노근리 사건 당시 상황 설명을 듣고 있다.오윤주 기자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회자 등이 2일 노근리 쌍굴다리 현장을 찾아 노근리 사건 당시 상황 설명을 듣고 있다.오윤주 기자
허버트 넬슨(58)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 등이 2일 노근리를 찾았다. 미국 장로교단은 소속 교인이 277만여명에 이르는 장로교회를 대표한다. 미국 정부에 사회정의, 인권, 평화 정책 등을 자문·건의하기도 한다. 미국 정부는 이들의 건의에 대해 공식 검토한 뒤 결과를 통보하는 것이 정례화돼 있을 정도로 권위적이다. 특히 넬슨은 워싱턴 지역 인권 목사로, 흑인 최초로 미국 장로교단 수장 격인 사무총장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노근리 평화기념관을 찾은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 넬슨은 워싱턴 등에서 인권 목사로 일하다 흑인 최초로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이 됐다.오윤주 기자
노근리 평화기념관을 찾은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 넬슨은 워싱턴 등에서 인권 목사로 일하다 흑인 최초로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이 됐다.오윤주 기자
이들은 지난해 6월 25일 열린 222차 미국 장로교단 총회의 결의에 따라 노근리를 방문했다. 당시 총회에서 이른바 ‘노근리 결의문’을 채택했고, 이들은 이를 실천하고 있다. 결의문에는 노근리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 미국 정부에 노근리 사건 인정과 희생자·유족에게 배상 촉구 등이 담겨 있다. 미국 장로교단은 지난 9월 22일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에 노근리 사건 공식 인정과 사과,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등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보내는 등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과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장로교단은 자매단체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 쪽이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을 건의하자 3년여전부터 노근리 사건을 주목해 왔다. 2015년 7월 에드워드 강 목사를 노근리 평화공원과 쌍굴다리 등에서 현장 조사를 벌였으며, 정구도 노근리 국제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통해 노근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왔다. 이어 뉴욕주 시러큐스 노회를 통해 미국 장로교단에 노근리 결의안을 상정했고, 지난해 6월 25일 222차 총회에서 노근리 결의안을 채택했다.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왼쪽 첫째) 등이 2일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정구도 노근리 국제평화재단 이사장(오른쪽 첫째)한테서 노근리 사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오윤주 기자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왼쪽 첫째) 등이 2일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정구도 노근리 국제평화재단 이사장(오른쪽 첫째)한테서 노근리 사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오윤주 기자
넬슨과 미국 장로교단 쪽은 노근리 평화공원, 쌍굴다리 현장 등을 방문하면서 내내 엄숙한 모습이었다. 특히 넬슨 사무총장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정구도 노근리 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의 노근리 관련 상황 설명을 경청해 눈길을 끌었다.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이 2일 노근리 평화공원을 찾아 노근리 희생자 등을 추모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오윤주 기자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이 2일 노근리 평화공원을 찾아 노근리 희생자 등을 추모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오윤주 기자
노근리 평화기념관을 찾은 넬슨은 방명록에 “노근리 사건의 깊은 슬픔에 대해 애도한다. 미국 장로교단은 미국 정부에 노근리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과 함께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썼다.

넬슨 등 미국 폭격 등으로 수백명이 희생된 쌍굴다리 현장도 찾았다. 당시 미군 공군의 폭력 상황과 피란민 상황 등을 전해 듣고 숙연해지기도 했다. 양해찬 노근리 유족회장과 정구도 노근리 평화재단 이사장 등은 노근리 쌍굴다리 곳곳에 남아 있는 탄흔을 가리키며 폭격 당시를 재현했다.

넬슨은 “노근리 현장에 와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현장 상황을 보니 매우 충격적이다. 미국 정부가 노근리 사건을 인정하는 등 미국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노력을 하겠다. 희생자·생존자·유족 등을 위해 미국이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교회의 소명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장로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이 2일 노근리 쌍굴다리에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유족과 만나 노근리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오윤주 기자
미국 장로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이 2일 노근리 쌍굴다리에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유족과 만나 노근리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오윤주 기자
양해찬 노근리 유족회장 등 유족들은 넬슨 등 미국 장로교단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회자 등을 반갑게 맞았다. 정구도 노근리 평화재단 이사장은 “미국 클린턴 정부 때 노근리 사건 유감을 표명한 뒤 미국 정부가 추모탑 건립 예산 119만 달러, 유족 장학기금 280만 달러 등 보상을 약속했지만 이후 흐지부지되면서 모두 환수된 상태다. 전쟁 당시 미군 관련 각종 범죄 사건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 장로교단이 미국 정부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조처에 항의하고,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에 나서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허버트 넬슨(왼쪽 둘째)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 등이 2일 노근리 평화공원 위령탑에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오윤주 기자
허버트 넬슨(왼쪽 둘째)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 등이 2일 노근리 평화공원 위령탑에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오윤주 기자
미국 장로교단 관계자들은 노근리 희생자 위령탑에 헌화하고 기념식수를 했다. 호세 루이스 카잘 미국 장로교단 사무처장은 “미국 정부와 미군의 되돌릴 수 없는 잘못에 대해 미국 시민으로서 용서를 구한다. 마음 깊이 사과한다. 우리의 잔혹함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는 “단지 67년 전의 잘못을 사과하는 것을 넘어 당신들과 미래를 함께하려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허버트 넬슨(오른쪽 넷째)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이 2일 노근리 평화공원에 백일홍을 기념식수하고 있다.오윤주 기자
허버트 넬슨(오른쪽 넷째)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이 2일 노근리 평화공원에 백일홍을 기념식수하고 있다.오윤주 기자
미국 장로교단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은 노근리 평화공원에 배롱나무(백일홍)를 심었다. 정구도 노근리 평화재단 이사장은 “백일홍은 노근리 사건이 일어났던 1950년 7월 말 처럼 한여름에 100일 정도 꽃을 피운다. 그때를 영원히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나무를 함께 심었다”고 말했다.

넬슨 목사 주도로 추모 예배도 진행됐다. 넬슨은 “노근리 학살은 하나님이 강조하는 사랑에 반하는 대표적인 행위다. 노근리는 잊힌 전쟁이다.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잊혔지만 이제 우리는 미국 정부에 회개할 것을 요구하는 행동을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정부가 노근리 사건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고, 유족·희생자 등에게 보상하게 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미국 장로교단은 1일 서울 전쟁 여성 인권 박물관을 찾은 데 이어 이날 노근리 평화공원을 찾았다. 이들은 3일 강원 철원 국경선 평화학교를 찾는 등 ‘평화기행’을 이어갈 참이다.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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