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70년생 개띠 모임 회원 최주영(48).
1970년 강원 춘천에서 태어났다. 여자 ‘개띠’인 셈이다. 하지만 창피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개띠 친구들과 마음이 잘 맞아 ‘춘천 70년생 개띠 모임’까지 만들었다.
촛불 정국 땐 춘천 70년생 개띠 모임 이름으로 ‘김진태 개소리에 쪽팔려서 못 살겠다!’, ‘박근혜는 깜빵으로, 김진태는 옆빵으로’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집회 현장을 누볐다. ‘나라가 개판인데 우리도 한번 개판 만들어보자’며 재미있게 시작했던 일에 많은 분이 호응을 해주셨다. 나중엔 ‘김기춘은 독방으로’ 등 수많은 버전으로 파생됐다.
처음 ‘김진태 개소리에 쪽팔려서 못 살겠다!’는 펼침막을 들고 광화문 집회 현장을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엔 춘천에서 왔다고 하니 “왜 그런 사람을 뽑았느냐”며 핀잔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나중엔 많은 사람이 함께 펼침막 뒤에 함께 서 줬다. 한 참가자는 “춘천 사람들도 다 김진태 같지는 않네요”라고 따뜻하게 웃어줬다.
촛불집회 때 목도리로 둘둘 말아 안고 나온 어린아이와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젊은 엄마의 모습도 아직 눈에 선하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구속되는 등 벅차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엄마 품에 안겨 추운 집회 현장에 나와야 했던 어린아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두 딸아이를 키우는 어른으로서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춘천 70년 개띠들이 촛불을 든지 1년 가까이 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촛불집회 때 나왔던 춘천 개띠 모임’ 회원이라고 소개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춘천에서 추진 중인 소녀상 건립 때도 개인으로 참여하려 했지만 ‘춘천 개띠 모임이 단체로 참여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단체 명의로 참여하게 됐다. 또 지역의 한 아동센터에 후원까지 하게 됐다. 친구들 사이에서 ‘춘천 개띠의 위상은 높였는데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요즘은 언론 정상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모임 회원 가운데 춘천문화방송 노조 간부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쪽에선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잘못된 것은 하루빨리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다시 평온한 일상이다. 하지만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국민 의식은 많이 변했다.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약속했다. 이전까지 무조건 보수 여당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사과하지 않는 박근혜가 잘못했다고 서슴지 않고 이야길 한다. 모든 일이 한 번에 이뤄지진 않는다. 모든 국민이 마음속에 촛불을 들고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잘 수행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