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배미영.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키우는 서른아홉살 엄마다. 대구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2012년 남편을 따라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북 성주로 이사 왔다. 주민들과 교류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이들을 잘 키우며 조용히 살고 싶었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없었다. 지난해 7월13일. 국방부가 우리 집 앞에 보이는 성산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한다고 발표하기 전까지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전자파가 강하다고 하던데’, ‘전쟁이 나면 어쩌지’. 아이들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정부 때문에 이렇게 불안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무작정 아이들을 데리고 성주군청 앞마당에서 열린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사드와 관련된 기사는 모조리 뒤져 봤다. 내 아이들의 문제였으니까. 그러다 “아무 쓸모도 없는 이런걸 왜 배치하려고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 동네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다가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를 외쳤다. 그러다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사드’와 같은 비상식과 부조리가 수없이 많다는 것을.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처음 열렸다.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기 시작했다. 결국 박근혜는 탄핵됐다. 지난 5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사드 문제에 있어서는 좀 불안했다. 하지만 촛불로 세워진 정권이니 만큼 기대가 생겼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버지를 잃은 딸을 눈물로 안아주고,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며 진상 조사를 약속하던 문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잠시나마 행복했다.
하지만 지난달 7일 문재인 정부는 사드를 추가 배치했다. 경찰이 주민들을 진압했다. 사드가 달마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갈비뼈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 누워있으니 서러웠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문제 만큼은 왜 이리 모질고 매몰찰까 싶었다.
한달 반이 지난 지금, 나는 마음이 통하는 이웃들과 서로를 토닥이고 위로하며 다시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에 나간다. 다른 주민들과 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닌다. 쓸모없는 사드가 한반도의 군사 긴장과 갈등을 높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내 곁에는 이런 일을 함께 하는 주민들이 있다. 소중한 나의 공동체다. 사드 반대의 촛불이 전국에서 다시 켜지는 날까지 우리는 삶 속에서 즐겁게, 신나게, 질기게, 건강하게 싸우고, 배우고, 성장하고, 변화해갈 것이다.
성주/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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