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혼다(오른쪽) 전 미국 연방 하원 의원이 13일 충북 보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강일출·이옥선씨 위안부 할머니들이 소개되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이들의 노력에 감사하고 있다.오윤주 기자
“너무 고마워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존재 인정과 사죄, 역사적 책임과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해온 일본계 미국인 마이크 혼다(76·본명 마이클 마코토 혼다) 전 미국 연방 하원 의원과 ‘살아있는 평화의 소녀’ 이옥선(87) 할머니가 13일 충북 보은에서 만났다.
오랜 동안 헤어졌던 오누이가 만나듯 둘은 손을 맞잡고 얼싸안았다. 혼다 전 의원은 떠듬떠듬 한국말로 “할머니 많이 보고 싶었어요”라고 했고, 이 할머니는 “고맙다. 정말 고맙다”를 연신 뱉었다. 이날 만남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박옥선, 강일출 할머니 등도 함께했다. 강 할머니는 혼다 전 의원에게 엄지손가락을 보이면서 “당신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정말 고맙다”며 혼다 전 의원과 포옹했다. 보은에서 홀로 지내는 이 할머니는 가끔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이들 할머니와 정담을 나누는 등 교류하고 있다.
보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나선 정상혁 보은군수,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 의원, 강일출·이옥선 할머니.오윤주 기자
혼다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일본 정부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존재 인정과 공식 사죄, 책임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미국 연방 하원에 제출해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으로 미국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전환됐다. 하지만 이후 혼다 전 의원은 일본 우익단체와 보수 언론 등으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기도 했다. 혼다 전 의원은 “일본에게 굴욕을 주려는 게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고 맞섰다. 혼다 전 의원은 미국 내 첫 평화의 소녀상인 글렌데일 소녀상 건립에도 힘을 쏟았다. 일본 극우 단체의 3년여에 걸친 미국 내 평화의 소녀상 철거 소송에 맞서 소녀상을 지켜내는 데도 힘을 보탰다.
보은 뱃들공원에 들어선 평화의 소녀상.오윤주 기자
할머니들과 혼다 전 의원은 이날 오후 3시 보은 뱃들공원에서 열린 보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때 만났다. 보은군 이장협의회 등 보은사회단체협의회는 지난 1월부터 소녀상 건립에 나섰으며, 지난 5월 ‘보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공동대표 구왕회·63)를 꾸렸다. 소녀상 추진위는 시민 성금을 벌여 9000여만원을 모았고, 보은 대추 축제 첫날인 이날 소녀상을 제막했다. 소녀상 곁에는 이옥선 할머니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위안부 실상을 알리기 위한 이 할머니의 노력 등을 새긴 기림비를 함께 세워 소녀상과 친구처럼 지내게 했다.
미국 글렌데일 시와 자매도시인 보은군은 이창엽 엘에이 한인타운개발위원장 등을 통해 혼다 전 의원의 방문을 요청해 이들 할머니와 만남이 성사됐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혼다 전 의원은 모국인 일본 한테서 엄청난 성토를 당하면서도 진실을 밝히려고 애썼다. 정의를 지킨 모든 한국인의 친구”라고 자랑했다.
마이크 혼다(오른쪽) 전 미국 연방 하원 의원이 13일 충북 보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이옥선 할머니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자 이 할머니가 활짝 웃고 있다.오윤주 기자
혼다 전 의원은 “나의 친구인 할머니를 만나게 돼 너무 반갑다. 이옥선·박옥선·강일출 세 할머니는 나의 친구”라고 했다. 그는 이들 할머니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의 참여를 제안했다. 그는 “1991년 이들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폭로해 세상이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다.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일본 정부는 이들 여성의 젊음을 빼앗아 갔지만 지금까지 사죄도,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제 젊은이를 포함한 국민이 나서야 할머니들이 당한 인권 유린을 막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상혁 보은군수가 마이크 혼다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게 감사패를 전하고 있다.오윤주 기자
혼다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청주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 특강에서도 젊은이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누군가 나서 싸웠기 때문에 사회가 변화했다. 젊은이라면, 잘못된 일이 있으면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나서라”고 말했다.
보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만난 살아있는 평화의 소녀 박옥선·강일출·이옥선 할머니.오윤주 기자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혼다 전 의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만나서 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나눔의 집에서 사는 할머니들은 이제 많이 늙었다. 나도 다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한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 등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강일출 할머니도 “혼다 같은 의원들이 도왔지만 결국 우리가 나서야 한다. 우리가 힘을 모아야 더는 일본에 안 당하고,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거들었다.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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