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독서광 김득신 선생을 좇는 김득신 독서 서당에 참가한 학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증평군청 제공
좀 느리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느리게 살기의 진수 백곡 김득신(1604~1684) 선생이 있다. 그는 조선 후기 시인으로 시집 <백곡집> 등을 남겼다. 느린듯하지만 제대로 산 김득신의 생이 조명받고 있다. 그가 나고 자라고 묻힌 고향 충북 증평군은 ‘독서광 김득신 문학관’을 내년 말께 건립할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증평도서관 주변에 45억원을 들여 조성될 김득신 문학관엔 창작 사랑방, 문학 토론방, 전시공간 등이 들어설 참이다.
청주민예총 서예위원회는 지난 8월 청주 예술의 전당 대전시실에서 ‘청풍명월을 노래하다’란 주제로 백곡 김득신 서예전을 열었다. 선생의 시를 옮겨 쓴 서예, 문인화 등이 걸렸다.
예술공장 두레가 김득신 선생을 소재로 만든 마당극 포스터. 증평군청 제공
예술공장 두레는 그를 소재로 만든 창작 마당극 ‘괴상한 선비, 괴상한 도깨비를 만나다’를 지난 27일 증평문화회관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앞서 색동예술단은 독서광 김득신을 소재로 퓨전 소리극을 만들어 지난 5월 파주출판도시 어린이 책 잔치 때 공연하기도 했다.
증평군은 해마다 김득신 독서 서당, 김득신 독서 골든벨을 열고 있으며, 좌구산 둘레길 들머리에 김득신 문학길도 조성했다.
‘빨리, 빨리’를 좇는 지금 김득신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삶이 느리지만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 천연두를 앓았다. 자연 공부도 남들에 견줘 뒤떨어졌다. 10살이 돼서야 글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김치는 서두르지 않았다.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김치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아들이다. 김치는 아들에게 “학문의 성취가 늦어도 성공할 수 있다. 읽고 또 읽으면 대문장가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김득신 문학관에 설치될 김득신 선생 독서 모형. 증평군청 제공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 목록을 꼼꼼하게 적은 ‘독수기’를 <백곡집>에 남겼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백이전’은 1억1만3000차례 읽었다고 썼으며, 그의 서재를 ‘억만재’로 불렀다. 당시 1억은 십만을 뜻하는 단위여서 요즘으로 환산하면 11만3000 차례 읽었다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독서에 부지런하고 빼어난 이로는 백곡이 제일”이라고 칭했다. 다산은 김득신의 ‘백이전’ 독수기를 두고 “하루에 100번씩 읽어도 4년은 꼬박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노자전’, ‘분왕’ 등은 2만 차례, ‘제책’, ‘귀신장’ 등은 1만8천 차례 읽었다고 기록하는 등 1만 차례 이상 읽은 책만 36권이었다. 수천 차례 읽은 것은 기록하지도 않았다. 그는 “‘백이전’, ‘노자전’ 등은 글이 넓고 변화가 커서, ‘제책’ 등은 독특해서 읽었다”고 쓰는 등 독서 이유도 함께 기술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지독한 독서가였지만 출세 또한 늦었다. 58살(1662년)에 급제해 정선군수, 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두루 인정을 받았다. 효종은 “백곡의 ‘용호’는 당나라 시에 견줄만하다”고 했으며, 박세당은 “자기만의 시어로 독특한 시 세계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특히 이식은 그를 “당대 최고 문장”이라고 극찬했다.
김득신 선생 묘소. 충북도는 2014년 이곳을 도 문화재로 지정했다. 증평군청 제공
그가 묘비명에 남긴 가르침은 오늘까지 이어진다.
“배우는 이는 재능이 남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마라. 나는 어리석었지만, 끝내 이루었다. 부지런해야 한다. 만약 재능이 없거나 넓지 못하면 한 가지에 정진해 한 가지를 이루려고 힘써라. 여러 가지 옮기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보다 낫다. 이 모두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