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법] 흔들리는 수원-삼성전자의 상생
지난달 31일 점심시간을 맞아 삼성전자 직원들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삼성전자 정문 앞 상가를 찾고 있다.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시 매탄동 상인들은 요즘 삼성에 불만이 많다. 삼성 직원 대부분이 계열사가 운영하는 구내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느라 밖에 나오지 않고 인근 호텔에서 잠을 자던 사업가들도 4년 전 호텔신라가 동탄에 문을 연 호텔 쪽으로 몰려가는 탓이다. “함께 살자”며 삼성의 상생을 고대하는 상인들에게 삼성전자는 “우리도 할 만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며 억울해한다.
4만명 근무하는 거대기업이지만
주변 식당가는 한산하기만
직원들 다양한 구내식당 이용
이재용 구속 뒤 분위기 침체도 한몫
주변 숙박업계도 한숨 소리
“동탄 신라스테이로 타격”
수원시 ‘관내 숙박시설 이용’공문
상인들 “일감 몰아주기 탓” 저녁 시간대라고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영통구청 인근 상가 1~2층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ㄷ씨는 지난달 말 권리금도 받지 않고 2층에 있던 식당을 넘겼다. 그는 7년 전 4천만원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지만 인건비에 월세를 견디지 못해 끝내 식당 문을 닫았다. 이곳 상가번영회 관계자는 “솔직히 삼성전자가 공장인지 회사인지 식당인지 분간이 안가. 구내식당이라지만 술만 안 팔지 빵집, 튀김집, 일식, 중식, 한식 어마어마하게 해놓았어. 결국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렇게 해서 돈 번 거 아니야. 삼성 쪽에 힘들게 살아온 서민들이 취급하는 사업은 하지 말라고 대놓고 이야기도 했어”라고 말했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회식 때 한 가지 음식을 갖고 2시간 안에 식사를 끝내는 ‘112운동’과 한 식당에서 한 가지 술을 갖고 9시 전에 끝내는 ‘119운동’을 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시름이 깊어진 영통구청 인근 상가번영회는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이 식사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45인승 셔틀버스를 마련한 뒤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식당가로 운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삼성전자 정문 앞 상가번영회는 직원들이 점심 시간에 길 건너 식당가로 바로 올 수 있도록 출근 때 쓰는 문(G5)을 열어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점심시간을 맞아 삼성전자 직원들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삼성전자 정문 앞 상가를 지나가고있다.
삼성 “지금도 잘하고 있다”
“직원 일부 회사 밖에서 식사
회사 급식 과거부터 해온 것”
일감 몰아주기 지적엔 펄쩍
“수원은 삼성전자의 모태”
주민들, 상생요구 높아져
삼성 “함께 고민해보겠다” 지역사회의 끊임없는 상생 요구에 삼성전자 쪽은 “지금도 상생을 잘 하고 있다”는 태도다. 삼성전자 관계자들은 “4만명(협력업체 5천여명 포함)의 직원 중 3만5천명은 13개 구내 식당에서, 10% 정도인 4천여명은 외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나가서 먹으라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수원에서 상권이 가장 좋은 곳이 삼성전자 근처고, 삼성의 회식은 자율적이다. 112, 119 운동 같은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수십억원을 들여 회사 안에 있던 퇴근 버스 정류장을 정문 앞으로 옮긴 것도 직원들이 인근 식당에서 저녁 회식을 편히 하고 집에 가도록 한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에 있던 삼성전자 본사도 (수원으로) 이전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생각을 하나도 안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전자는 1969년 12월 일본 기업과 합작투자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수원시 매탄동 일대 2만5천여㎡에 들어섰다. 삼성전자의 모태가 된 수원시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삼성전자 월급 날은 수원천 주변의 통닭집이 삼성전자 직원들로 가득 찼다’고 할 만큼 동반 성장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통닭이 팔리는 곳은 삼성전자 안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와 지역 주민들의 동반 성장에 균열이 생긴 배경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론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후 침체된 삼성전자 분위기가 거론된다. 하지만 근본엔 ‘삼성의 내부 일감 몰아주기’의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선 삼성전자의 구내 식당을 맡아 운영하는 업체는 웰스토리다. 급식과 식자재공급업을 하는 이 회사는 직원만 6천명으로, 삼성 계열사들의 구내 식당을 위탁 운영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인 삼성물산의 사업부였으나 2013년 자회사로 분리됐다. 삼성전자의 외국 비스니즈맨들이 많이 찾는 신라스테이 동탄은 이재용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이사가 운영하는 호텔신라의 계열사로 2013년 문을 열었다. 삼성전자 쪽은 점심식사에 3만5천명을 포함해 직원 다수가 아침과 저녁에도 무료인 구내 식당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최소 1천억원 이상이 식비로 웰스토리에 지급되는 셈이다. 호텔신라는 신라스테이 동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1개의 비즈니스 호텔을 전국에 잇따라 열었다. 신라스테이 동탄 인근에는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반도체 화성과 용인 공장이 있고 신라스테이 천안 인근에는 삼성반도체 천안 공장이 있다. 수원 지역 상인들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로 죽어나는 것은 (자영업자인) 우리’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수원 호텔업체의 한 관계자는 “(호텔신라가) 신라스테이로 손님들을 데려간다. 삼성전자 안엔 드림빌을 짓고 인도인들을 데려갔다. 이들이 주로 머물던 ㅇ호텔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인데 말을 할 수가 없다. 삼성에 찍히면 더 곤란해진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펄쩍 뛴다. “해외에서 오는 출장자는 우리가 관여를 안한다. 어디에 머물든 상관 없다. 다만 국내 출장자는 등록해둔 수원시 호텔 6곳에 머물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회사에서 사후에 경비 처리를 한다”는 게 삼성전자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이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 쪽은 “회사 내 단체급식은 과거부터 해온 것이다. 3만5천명이 문제 없이 식사하게 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상생을 둘러싼 수원 지역과 삼성전자의 인식 차이와 갈등은 당분간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광열 수원시 기업지원과장은 주민들의 높아지는 상생 요구와 관련해 “수원은 삼성전자의 모태 도시다. 반세기를 함께 성장해왔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지역의 공익적 사업과 인프라 구축 등을 함께 해나가는 삼성전자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민들의 상생 요구가 있으면 같이 고민을 해보겠다”고 밝혔다. 수원/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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