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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탓? 삼성-수원 ‘48년 동맹’이 흔들린다

등록 2017-09-05 09:36수정 2017-09-05 11:49

[밥&법] 흔들리는 수원-삼성전자의 상생



지난달 31일 점심시간을 맞아 삼성전자 직원들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삼성전자 정문 앞 상가를 찾고 있다.
지난달 31일 점심시간을 맞아 삼성전자 직원들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삼성전자 정문 앞 상가를 찾고 있다.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시 매탄동 상인들은 요즘 삼성에 불만이 많다. 삼성 직원 대부분이 계열사가 운영하는 구내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느라 밖에 나오지 않고 인근 호텔에서 잠을 자던 사업가들도 4년 전 호텔신라가 동탄에 문을 연 호텔 쪽으로 몰려가는 탓이다. “함께 살자”며 삼성의 상생을 고대하는 상인들에게 삼성전자는 “우리도 할 만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며 억울해한다.

“식당을 그렇게 많이 들여놓고 상생한다고? 말이 안 되지.”

지난달 31일 낮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본사 중앙문 앞 인근 음식점. 점심 먹는 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낮 12시30분에 식당 안은 한산했다. 중앙문과 정문 등 8개 출입문을 통해 삼성전자 직원들이 삼삼오오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텅빈 거리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영통구청 앞 한 식당에 들어서자 10여개의 홀 테이블 중 절반 정도만 찼다. 이 식당 주인 ㄱ씨는 “홀에 10개, 룸에 10여개 정도 테이블이 있는데 하루에 4번은 테이블이 돌아야 인건비 포함해 겨우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했다. 손님 수를 묻자 ㄱ씨는 “기자가 본 게 오늘 전부”라고 했다. 주인 ㄱ씨는 “삼성전자 안에 식당이 몇 개인지 알아요? 21개씩이나 들여놨어. 굴짬뽕 철이다 하면 굴을 구내식당에 쌓아 놓고 맘대로 먹게 하는데 누가 밖으로 나오겠어. ‘서민들 먹고 살게 식당은 하지 말라’던 정주영 현대 회장처럼 하라는 건 아니야. (식당 수를) 어느 정도만 줄여달라는 거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음식점이 밀집된 영통구청 옆 상가 거리의 주 고객은 삼성전자 직원들이다. 하지만 오후 4시부터 영업을 한다는 팻말을 내건 채 상당수 건물 1~2층의 불은 꺼져 있었다. 대신 점심시간이면 회사 안에서 식사를 마친 삼성전자 직원들이 정문과 중앙문 인근 상가로 쏟아져 나와 커피와 담배를 즐기느라 북새통을 이룬다.

삼성전자 정문 앞에서 커피숍을 하는 ㄴ씨는 “삼성 직원들이 회사에서 나오는 데 20분, 들어가는 데 20분 걸려요. 시간이 없어서 나와서 점심 먹기가 빠듯해. 우리라고 담배 연기가 좋을 리 있나. 하지만 담배라도 피우러 공장 밖으로 나오면 우리야 반갑지”라고 말했다. 영통구청 식당가 앞에서 만난 삼성전자의 한 직원 역시 이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오고 가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 가능하면 오늘 먹은 짬뽕처럼 빨리 먹을 수 있는 중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4만명 근무하는 거대기업이지만
주변 식당가는 한산하기만
직원들 다양한 구내식당 이용
이재용 구속 뒤 분위기 침체도 한몫

주변 숙박업계도 한숨 소리
“동탄 신라스테이로 타격”
수원시 ‘관내 숙박시설 이용’공문
상인들 “일감 몰아주기 탓”

저녁 시간대라고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영통구청 인근 상가 1~2층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ㄷ씨는 지난달 말 권리금도 받지 않고 2층에 있던 식당을 넘겼다. 그는 7년 전 4천만원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지만 인건비에 월세를 견디지 못해 끝내 식당 문을 닫았다. 이곳 상가번영회 관계자는 “솔직히 삼성전자가 공장인지 회사인지 식당인지 분간이 안가. 구내식당이라지만 술만 안 팔지 빵집, 튀김집, 일식, 중식, 한식 어마어마하게 해놓았어. 결국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렇게 해서 돈 번 거 아니야. 삼성 쪽에 힘들게 살아온 서민들이 취급하는 사업은 하지 말라고 대놓고 이야기도 했어”라고 말했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회식 때 한 가지 음식을 갖고 2시간 안에 식사를 끝내는 ‘112운동’과 한 식당에서 한 가지 술을 갖고 9시 전에 끝내는 ‘119운동’을 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시름이 깊어진 영통구청 인근 상가번영회는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이 식사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45인승 셔틀버스를 마련한 뒤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식당가로 운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삼성전자 정문 앞 상가번영회는 직원들이 점심 시간에 길 건너 식당가로 바로 올 수 있도록 출근 때 쓰는 문(G5)을 열어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점심시간을 맞아 삼성전자 직원들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삼성전자 정문 앞 상가를 지나가고있다.
지난달 31일 점심시간을 맞아 삼성전자 직원들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삼성전자 정문 앞 상가를 지나가고있다.
지역 숙박업계도 울상이다. 2013년 인근 동탄에 신라호텔 계열사인 신라스테이가 문을 열면서 시작된 투숙객 감소세가 지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뒤에도 지속되고 있다. 수원의 호텔 관계자 ㄹ씨는 “사드로 중국 관광객이 줄고 삼성 관련 비즈니스 고객들이 신라스테이(동탄)로 빠지면서 어려움이 커져 지역 호텔 매물만 10개가 나왔다”고 전했다. 업계가 울상을 짓자 수원시는 지난 4월 삼성전자에 ‘지역 상생을 위한 수원시 숙박시설 협조’ 공문을 보냈다. “지역 상생의 일환으로 삼성전자에 협력을 요청하오니 삼성전자 비즈니스 고객들이 수원시 관내 숙박업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답은 없다.

삼성전자 앞에 5층 건물을 소유한 이아무개씨는 “삼성전자가 공장 안으로 협력업체를 끌어들이는 바람에 사무실 2개가 1년째 공실로 남아 은행 대출금 갚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수원시가 제조·연구업체인 삼성전자에 임대업을 허가하고 공장 지역의 용도를 변경해준 일을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수원세무서에서 허가를 받아 임대업을 하고 있다. 수원시는 2015년 4월 일반공업지역인 삼성전자 내 15만㎡를 식당과 판매, 업무 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준주거지역으로 용도를 바꿔줬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장 총량제에 묶인 수원시의 요청에 따라 용도를 바꾼 것이다. 사무실 수요 예측을 잘못한 빌딩 소유자들이 왜 삼성 탓을 하냐”고 반박했다.

최근 분위기는 수원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 들어 삼성전자는 매년 후원해오던 수원 화성문화제 축제 지원금 3천만원을 최근 거절하는 등 수원시에 대한 지원을 줄줄이 줄이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매년 행사 때 지원해주던 버스 1대를 거절하길래 ‘최순실한테는 수십억씩 쏟아부으면서 너무 한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아무 말도 않더라”고 전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전체 규모는 139만여㎡. 삼성전자의 모든 통로가 내부에서 하나로 모인다는 아르파이브(R5) 빌딩은 최근 완공됐다. 최근 이곳을 찾아 둘러보니 지하에는 한식당, 중식당 등 다양한 대식당들이 있고, 원가 6천원 안팎의 음식들이 직원들에겐 무료로 제공된다. 지하 식당에서 걸어서 정문 밖으로 나오는 데는 대략 10여분이 걸렸다. 삼성전자 관계자들도 사무실에서 정문 밖 상가까지 출입하는 데 대략 40분 정도가 걸리는 점을 인정했다.


삼성 “지금도 잘하고 있다”
“직원 일부 회사 밖에서 식사
회사 급식 과거부터 해온 것”
일감 몰아주기 지적엔 펄쩍

“수원은 삼성전자의 모태”
주민들, 상생요구 높아져
삼성 “함께 고민해보겠다”

지역사회의 끊임없는 상생 요구에 삼성전자 쪽은 “지금도 상생을 잘 하고 있다”는 태도다. 삼성전자 관계자들은 “4만명(협력업체 5천여명 포함)의 직원 중 3만5천명은 13개 구내 식당에서, 10% 정도인 4천여명은 외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나가서 먹으라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수원에서 상권이 가장 좋은 곳이 삼성전자 근처고, 삼성의 회식은 자율적이다. 112, 119 운동 같은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수십억원을 들여 회사 안에 있던 퇴근 버스 정류장을 정문 앞으로 옮긴 것도 직원들이 인근 식당에서 저녁 회식을 편히 하고 집에 가도록 한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에 있던 삼성전자 본사도 (수원으로) 이전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생각을 하나도 안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전자는 1969년 12월 일본 기업과 합작투자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수원시 매탄동 일대 2만5천여㎡에 들어섰다. 삼성전자의 모태가 된 수원시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삼성전자 월급 날은 수원천 주변의 통닭집이 삼성전자 직원들로 가득 찼다’고 할 만큼 동반 성장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통닭이 팔리는 곳은 삼성전자 안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와 지역 주민들의 동반 성장에 균열이 생긴 배경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론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후 침체된 삼성전자 분위기가 거론된다.

하지만 근본엔 ‘삼성의 내부 일감 몰아주기’의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선 삼성전자의 구내 식당을 맡아 운영하는 업체는 웰스토리다. 급식과 식자재공급업을 하는 이 회사는 직원만 6천명으로, 삼성 계열사들의 구내 식당을 위탁 운영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인 삼성물산의 사업부였으나 2013년 자회사로 분리됐다. 삼성전자의 외국 비스니즈맨들이 많이 찾는 신라스테이 동탄은 이재용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이사가 운영하는 호텔신라의 계열사로 2013년 문을 열었다.

삼성전자 쪽은 점심식사에 3만5천명을 포함해 직원 다수가 아침과 저녁에도 무료인 구내 식당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최소 1천억원 이상이 식비로 웰스토리에 지급되는 셈이다. 호텔신라는 신라스테이 동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1개의 비즈니스 호텔을 전국에 잇따라 열었다. 신라스테이 동탄 인근에는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반도체 화성과 용인 공장이 있고 신라스테이 천안 인근에는 삼성반도체 천안 공장이 있다.

수원 지역 상인들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로 죽어나는 것은 (자영업자인) 우리’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수원 호텔업체의 한 관계자는 “(호텔신라가) 신라스테이로 손님들을 데려간다. 삼성전자 안엔 드림빌을 짓고 인도인들을 데려갔다. 이들이 주로 머물던 ㅇ호텔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인데 말을 할 수가 없다. 삼성에 찍히면 더 곤란해진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펄쩍 뛴다. “해외에서 오는 출장자는 우리가 관여를 안한다. 어디에 머물든 상관 없다. 다만 국내 출장자는 등록해둔 수원시 호텔 6곳에 머물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회사에서 사후에 경비 처리를 한다”는 게 삼성전자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이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 쪽은 “회사 내 단체급식은 과거부터 해온 것이다. 3만5천명이 문제 없이 식사하게 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상생을 둘러싼 수원 지역과 삼성전자의 인식 차이와 갈등은 당분간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광열 수원시 기업지원과장은 주민들의 높아지는 상생 요구와 관련해 “수원은 삼성전자의 모태 도시다. 반세기를 함께 성장해왔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지역의 공익적 사업과 인프라 구축 등을 함께 해나가는 삼성전자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민들의 상생 요구가 있으면 같이 고민을 해보겠다”고 밝혔다.

수원/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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