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의회가 4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김학철 의원 등의 징계를 의결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물난리를 뒤로 하고 국외연수를 떠났다가 ‘국민은 레밍’이라는 막말을 쏟아냈던 김학철(47·무소속·충주1) 충북도의원에게 출석정지 30일 징계가 결정됐다. 자유한국당이 제명 조처로 정치적 생명줄을 잘랐지만, 충북도의회가 사실상 면죄부를 주자 의원직 사퇴·제명을 요구했던 시민단체들은 제 식구 감싸기라며 의회를 강하게 규탄했다.
충북도의회는 4일 본회의에서 수해 속 국외연수 의원 징계의결의 건을 상정해 김 의원은 30일 출석정지, 박한범(56·무소속·옥천1)·박봉순(58·무소속·청주8) 의원은 공개사과 등 도의회 윤리특별위원회가 넘긴 징계 수위를 원안대로 가결했다.
본회의 의결에선 김 의원의 징계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며 더민주 연철흠 의원 등의 문제 제기로 ‘김 의원 제명건’이 수정 발의됐지만 16명(재적 27명)이 반대(찬성 11)해 부결됐다. 연 의원은 “부적절한 연수를 넘어 국민과 의회를 비하한 김 의원은 당연히 제명돼야 하지만 제 식구를 감싸는 김 의원의 친정(자유한국당)을 넘어설 수 없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열린 도의회 윤리특위는 “도의원으로서 성실한 직무 수행, 품위 유지 의무(지방자치법 36조)를 위반했다”며 이들 의원의 징계를 결정하고, 도의회 본회의에 상정했다.
충북도의회가 출석정지 30일, 공개회의 사과 등 징계를 의결한 김학철·박한범·박봉순 의원. 충북도의회 제공
김 의원 등은 지난 7월 18일 청주 등의 수해를 뒤로하고 프랑스·이탈리아 등으로 외유성 국외연수를 떠나면서 비판 여론이 일자 조기 귀국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같은 달 24일 이들 의원 3명을 제명 조처했다. 함께 연수를 떠났던 더불어민주당 최병윤(56·음성1)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했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등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 29곳으로 이뤄진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들 의원의 자진 사퇴와 도의회 차원의 제명 조처를 주장해왔다. 이들은 4일 오전 의회 윤리특위 회의장 앞에서 ‘충북도민 명예 실추시킨 도의원 강력히 징계하라’, ‘도의회가 감싸야 할 제 식구는 의원이 아니라 도민입니다’ 등 손팻말을 들고 이들 의원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충북도의회 윤리특별위원회가 4일 오전 김학철 의원 등의 징계 수위 등을 논의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하지만 의회가 출석정지, 공개 사과 선에서 징계를 마무리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최진아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은 “도의회가 끝내 도민에게 등을 돌렸다. 제 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도민을 외면한 의회엔 심판만 남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단체 회원 등으로 이뤄진 김학철 의원 등의 제명을 반대하는 시민연합은 “김 의원의 해외 연수는 정당한 행위로 잘못을 지적할 수 없다. 레밍 등 발언을 이유로 징계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보복행위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이들 의원의 징계가 처리된 충북도의회는 시민단체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김학철은 죄가 없다’(보수단체), ‘김학철을 제명하라’(시민단체) 등 상반된 손팻말을 들고 서로 고성을 주고받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보수단체 쪽에서 “김학철은 죄가 없다”고 하자, 시민단체 쪽에선 “양심도 없다”며 맞받는 등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회원 등이 4일 오전 충북도의회에서 김학철 의원 등 수해 속 국외연수 의원들의 중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충북지역 보수단체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오후 김학철 의원 등의 징계가 결의된 충북도의회 앞에서 징계 반대와 중징계를 요구하는 맞불 집회를 열고 있다.오윤주 기자
시민단체들은 도의회 윤리특위 등 충북도의회를 강하게 성토했다. 도의회 윤리특위는 지난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에서 탄핵주도 국회의원들을 ‘미친개’에 비유한 김학철 의원, 2015년 술자리에서 공무원에게 술병을 던진 박한범 의원 등에게 모두 면죄부를 준 바 있다.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김 의원에게 출석정지는 의정비를 받으면서 쉬게 하는 어쩌면 포상휴가에 가까운 징계다. 윤리특위 위원 반수 이상을 외부 인사로 구성해야 한다. 비공개로 제 식구를 감싸는 관행을 바로 잡으려면 공개적이고 투명한 회의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의회 더민주 의원 일동도 “각 정파의 이해관계를 차단할 수 있게 외부 인사를 포함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5일 오전 10시 30분 도의회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여는 등 도의회 심판에 나서기로 했다. 최진아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은 “도의회의 폭거를 영원히 기록하고 시민들에게 알려 나가는 유권자 운동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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