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수도 이전에 대해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총리의 발언은 최근 국회의장실의 여론조사 결과나 지난 대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도 다르다.
이 총리는 20일 <연합뉴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는 수도 이전에 대해 “다수 국민이 동의해주지 않을 것 같다. 헌법재판소에서도 관습헌법이라고 했다. 국민이 수도가 옮겨가는 것에 동의해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1일 <한겨레> 취재 결과, 이 총리의 발언은 실제 여론조사 결과와는 다른 것이다. 지난 7월 국회의장실에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49.9%가 수도 이전에 찬성했고, 44.8%가 반대했다. 특히 지역별로는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찬성률이 50%를 넘겼으며, 호남·제주에선 61.9%에 이르렀다. 전문가 조사에선 수도 이전에 64.9%가 찬성했고, 35.1%만 반대해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이번 발언은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공약한 내용과도 다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정치·행정 수도의 세종시 이전도 개헌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물어 찬성이 높으면 개헌 내용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당선 뒤인 5월에도 “개헌을 통해 세종시로 수도를 이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현수 충남연구원장은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수도 이전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는데, 총리가 개인 소신으로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정부 의지가 중요한 상황에서 답답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관습헌법을 언급한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울이 수도’라는 내용이 헌법에 없지만, ‘관습헌법’으로 내재한다는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한민국의 성문헌법 체계에 불문헌법 조항을 억지로 끼워넣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성문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결정도 법리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총리의 이번 발언은 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지방분권이나 균형발전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이후 추진한 지방분권, 지역균형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바로 서울에 강력한 중앙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꾸려면 이번 개헌 때 반드시 수도 이전과 분권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시와 시민단체들도 이 총리 발언을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행정수도완성 세종시민대책위원회는 21일 성명을 내어 “수도 이전을 위해 앞장서도 모자랄 이 총리가 논의 자체를 포기한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직무유기다. 국민에게 즉각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춘희 세종시장도 “수도 이전 개헌은 대통령 공약인데, 이 총리의 발언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더 의지를 갖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서울시도 수도가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차원에서 합리적 토론을 거쳐 이 문제를 결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문이 커지자 총리실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어 “이 총리는 민심의 동향을 말한 것이며, 수도 이전에 부정적 입장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수도 이전 여부는 국민의 의사를 물어 결정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공약”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이 공약했다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 국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한다. 이 총리의 발언은 청와대와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규원 노지원 이정애 정유경 기자, 대전/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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